카톡에 떠다니는 '대한민국 정부'

서울-세종시 부처 대화방에 핵심자료 빼곡
은밀한 대화내용·국가 기밀 해킹에 無방비

국정원 "카톡 해킹 막는 것 불가능"
정부 핵심 자료와 고위 간부들의 대화내용이 민간 모바일 메신저 서비스인 카카오톡에 무방비로 둥둥 떠다니고 있다. 공무원들이 일명 ‘카톡 대화방’을 새로운 회의 플랫폼으로 활용하면서다.

연말 ‘예산 전쟁’이 끝난 직후인 지난 1일, 기획재정부 예산실과 세제실은 국·과가 개설한 내부 카톡 대화방에 대해 일제 폐쇄명령을 내렸다. 이들의 대화방에는 예산 관련 사업 내용과 숫자, 관련 부처가 제출한 배경 자료 등이 빽빽하게 올려져 있었다. 자료 내용을 스마트폰 카메라로 촬영해 통째로 올려 놓은 것도 부지기수였다. 고위 간부들의 ‘정무적 판단’이 담긴 대화내용도 적지 않았다는 전언이다. 누군가 이들 대화방을 해킹할 경우 정부의 1급 자료뿐만 아니라 고위 공무원의 대화내용이나 정치인들에 대한 내밀한 정보가 통째로 유출될 수 있는 구조다. 예산실의 한 과장은 “우리도 이런 식으로 소통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지만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다”며 “카톡 없이는 업무가 돌아갈 수 없는 여건”이라고 토로했다.

업무 권역이 서울과 세종시로 나눠진 상황에서 공간적 제약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모바일 메신저의 대화방을 활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 경제부총리와 차관의 국회 답변이나 국회 법안심사에 필요한 각종 자료를 공수할 수 있는 유일한 방편이라는 설명도 곁들였다. 예산안 처리 같은 큰 사안이 아니더라도 평상시 업무 처리를 위해 기재부 내에 개설돼 있는 카톡방은 수십개에 달한다.

정부도 이 문제의 심각성을 모르는 게 아니다. 기재부의 한 고위 간부는 “사실 지금 카카오 서버를 뒤져보면 대외비 자료, 각종 보고서 초안 등 어마어마한 정보가 있을 것”이라고 털어놨다. 기재부는 이에 따라 지난해 말 국가정보원에 카카오톡 이용과 관련, 대외비 정보의 외부 유출 가능성을 공식 질의했다. 돌아온 답변은 “어떤 시스템이든 해킹을 막는 것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불가피하게 대화방을 개설한다면 ‘용무’가 끝난 뒤 바로 폐쇄하라고 권고했다.

이에 본지는 카톡을 운영하는 카카오에 이 문제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카카오의 공식 입장은 “국정원에서 내린 유권해석에 대해 공식적으로 드릴 말씀이 없다. 다만 카카오톡은 전 국민이 사용하는 서비스인 만큼 철저한 보안 수준과 강력한 정보 보호 체계를 확립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보안 전문가들은 “카카오도 이 세상에 100% 안전한 인터넷 서비스는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런 정도로밖에 대답할 수밖에 없다”며 “특히 카톡은 기업용이나 정부용이 아니라 일반인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서비스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보안 수준이 낮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현재 카카오 서버에 저장돼 있는 정보들의 보관기간은 평균 5일이다. 카카오는 스미싱 등 해킹 방지를 위해 각종 정보로 위장한 악성 링크 메시지를 받을 경우 주의 안내 팝업을 띄워주는 스마트 링크 차단기술 등을 도입했지만 이 정도로 전문 해커들의 침투를 막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는 지적이 많다.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보안 소프트웨어를 계속 업데이트한다고 하더라도 해킹 기술은 무궁무진하다”며 “삭제된 대화내용을 복원하거나 메시지를 중간에 가로챌 수 있는 위험도 상존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궁극적으로 “공무원이나 공공기관에 있는 사람들은 모바일 메신저를 가급적 쓰지 않는 게 좋다”고 권고했다.

문제는 공무원들의 보안 취약성을 우려해 카톡을 쓰지 않으려 해도 긴급하게 업무를 처리해야 할 상황이 되면 어쩔 수 없이 대화방을 만든다는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의 한 관계자는 “대면 보고를 해야 하지만 만날 수 없거나 갑자기 다급한 사안이 발생할 때는 카톡을 활용할 수밖에 없다”며 “전화로 통화하거나 문자 메시지로 찍어 보내기에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그럼에도 카톡 대화방 운영에 대한 정부 내 명확한 지침은 없는 상태다. 안전행정부 측은 “보안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본 뒤 대책 마련 여부를 검토하겠다”는 원론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김홍열/이심기/임근호 기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