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50-한경 연중기획] 이한구 "기업인을 범죄집단 매도하면 누가 기업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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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기업가정신인가 - 이한구 새누리 의원, 경제민주화 '자성론'“기업인을 ‘나쁜 놈’으로 전제하고 규제를 만드는 게 경제민주화입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누가 기업을 경영하려 들고 어떤 젊은이가 기업가가 되고 싶겠습니까.”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지낸 이한구 의원(69)은 한국 사회의 반기업 정서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우려했다. 이 의원은 지난 3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경제민주화 규제가 기업과 기업가를 나쁘게 보는 시각을 확산시키고 있다”며 “대기업을 못살게 괴롭혀야 사회 정의가 실현된다는 생각이 만연해 있다”고 지적했다. 또 동반성장 정책 등 경제민주화 법안에 대해 “기업들이 국제경쟁을 하는 시대에 국내에서만 유별난 제도를 만들고 있다”며 “기업의 경영 판단 결과에 대해 과잉 처벌하는 내용도 상당히 많다”고 꼬집었다. ▷최근 우리사회에서 기업가정신이 쇠퇴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정치권에 한마디
대기업 못살게 괴롭혀야 사회정의 실현된다는 잘못된 생각 갖게 만들어
창업 활성화 위해선
기업부문에서도 김연아 같은 스타 나오려면 기업인 존중 필요
“과거에는 박두병 두산그룹 초대 회장, 최초 무역회사인 천우사의 설립자 전택보 씨 등 기업으로 나라를 세우겠다는 ‘기업입국(企業立國)’ 정신을 가진 분이 많았죠. 최근에는 기업이 2~3세로 너무 쉽게 승계되고, 그들이 ‘안전한 장사’에만 매진하며 이런 정신이 희박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창조도 궁해야 나오는 거죠. 옛날엔 다들 굶던 때여서 된다 싶은 일이 있으면 죽기 아니면 살기로 덤볐습니다. 그런데 요즘엔 먹고 살만해지니까 헝그리정신이 없어진 거죠. 또 빈부격차가 심해지니 잘된 사람을 질투하고 증오도 하는 것 같습니다.”
▷기업가정신 쇠퇴에 대한 정치권의 책임은 어느 정도라고 봅니까. “포퓰리즘(대중인기 영합주의)이 아니면 정치생활을 오래 할 수 없는 게 국내 정치권의 수준입니다. 반기업 정서 같은 잘못된 사회 분위기를 교정하기보다 그것을 악용하려는 사람들이 정치권에 모여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기업가정신이 쇠퇴한 데 대한 정치권의 책임은 매우 크다고 생각합니다.”
▷일감 몰아주기 과세 강화 같은 경제민주화 법안들은 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이런 법안들에는 기업인은 나쁜 사람이고 보통 방식으로는 교정이 안 된다는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경영상 판단에 대해 형사 처벌까지 한다는 건데 어떻게 기업 경영을 신나게 하겠습니까. 어떤 젊은이가 기업가가 되겠다는 생각을 하겠어요. 또한 기업 경영과 관련된 법은 글로벌스탠더드에 맞춰야 하는데 다른 나라에 없는 유별난 제도를 만들면서 그걸 피해 해외로 빠져나가는 기업을 나쁘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정부가 최근 ‘김우중 추징법’(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습니다. 기업 경영에 영향을 미치진 않을까요.
“실정을 잘 모르는 법무부 같은 곳에서 처리했고 청와대에서 막았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습니다. 국회도 인기 아이템이니 통과시킬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전두환 추징금’과 ‘김우중 추징금’은 엄연히 다릅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돈을 횡령한 것이니까 부정 축재입니다. 하지만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돈을 빼먹은 게 아닙니다. 외국환관리법 등을 위반했다고 벌금 매기고 징벌적 추징금을 때린 겁니다. 당시 자금을 담당하던 임원들에게도 추징하고 연좌제로 가족 재산까지 몰수하겠다는 건데요. 이건 헌법정신하고도 안 맞습니다. 공론화하고 싶지만 제가 대우연구소 출신이라 순수하게 받아들여질 것 같지 않아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는데요. 이 법은 김 전 회장만 당하는 게 아니라 모든 경제인이 당할 수 있는 법입니다. 경영상 판단을 형사 처벌까지 하는 배임도 너무 쉽게 규정했어요. 이제 누가 기업하려고 할 것이며 어떻게 나라 경제가 유지되겠습니까.”
▷일부 기업인이 횡령·탈세 등을 일삼고 부가 한쪽으로 쏠려 있기 때문에 경제민주화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일부 재벌 행태가 잘못됐다고 해서 그 회사를 망하게 하거나 잘못 없는 대기업 오너나 부자들까지 곤란하게 만들면 누가 좋나요. 그렇게 하면 잠시 속은 후련할지 몰라도 공동체 전체적으로 무슨 이득입니까. 역사적으로 볼 때 공산주의자들이 부자를 망하게 하면 가난한 사람들이 잘될 거란 식으로 떠들었지만 결국 같이 망하지 않았습니까.”
▷기업이 현금을 쌓아 놓고 투자를 안 해 경기가 살아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기업이 현금을 많이 갖고 있는데 투자를 안 하니 투자를 하게 하자는 말은 나쁜 주장입니다. 기업이 현금을 쥐고 투자를 안 한다는 건 굉장히 고통스러운 상태에 있다는 뜻입니다. 기업이 추구하는 최고 가치는 이윤 창출인데 돈을 벌 데가 있으면 왜 현금을 쌓아 놓겠습니까. 그걸 정부가 억지로 투자시켰다가 나중에 나쁜 일이 터지면 그 기업은 현금이 없어져 망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간섭이 기업가정신을 위축시키는 대표적 사례입니다.”
▷선진국에 비해 우리나라는 창업 기업 숫자가 너무 적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지금과 같은 제도 아래서는 젊은이들이 창업을 포기하고 안정적인 공기업이나 돈 많이 주는 대기업에 입사하는 게 당연합니다. 한국 사회에는 강성 노조 때문에 리스크는 지지 않으면서 자기가 일하는 것보다 많은 보수를 받아가는 곳이 많습니다. 이들이 생산성보다 높은 이득을 챙길수록 어딘가에서는 생산성보다 못 받는 부류가 생깁니다.”
▷창업 활성화가 올해 핵심 국정과제입니다. 제대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어떤 게 필요할까요.
“기업 부문에서도 박세리 선수나 김연아 선수, 정경화 바이올리니스트 같은 영웅이 나와야죠. 그러려면 정부가 기업과 경영인을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중요합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기업 창업이 많았던 것은 정부가 수출을 많이 하는 기업을 포상하고 중화학공업, 반도체 사업을 하겠다는 기업이 있으면 격려해줬기 때문이에요. 그렇다 보니 신이 나서 서로 기업하려 했던 거죠. 몇몇 사람이 잘못한다고 기업인 모두를 한묶음으로 욕보여선 안 됩니다. 기업인을 범죄 집단으로 매도하면 누가 창업하려고 하겠습니까.”
■ 이한구 의원은…공직→기업→정치인, '근혜노믹스' 입안 주도
4선(選)의 새누리당 중진이다. 여당 내 대표적 경제통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교사’로 불린다. 박 대통령이 당 대표를 맡고 있던 2004년부터 ‘근혜노믹스’ 입안을 주도했다. 18대 대선을 앞둔 2012년 5월 당 원내대표를 맡아 박 대통령의 대선 승리를 이끌었다. 1969년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재무부 이재과장·외화자금과장 등을 거쳤다. 공직을 떠난 뒤 대우경제연구소장을 지냈고 2000년 한나라당에 입당해 정치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1945년 경북 경주 △경북고 △서울대 경영학과 △미국 캔자스주립대 경제학 박사 △행정고시 7회 △재무부 이재과장·외화자금과장 △대우경제연구소장 △16~19대 국회의원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