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수출 막은 '정부發 소비자평가'

용역 맡긴 부처 입맛따라 기준 '들쭉날쭉'
정부 인증 제품조차도 "성능 미달" 판정
공기청정기를 만드는 한 중소기업 사장은 요즘 밤잠을 설치는 일이 잦다. 가까스로 확보한 해외 거래처가 최근 연락을 끊었기 때문이다. 한국소비자연맹이 지난해 11월 내놓은 ‘공기청정기 성능 비교 평가 결과’가 화근이었다. 이 회사 제품 성능이 ‘기준’에 미달한다는 사실이 발표되면서 “거래하기 힘들 것 같다”는 통보를 받은 뒤였다. 그는 “거래처가 요구하는 사양에 맞춰 만들었고 인증기관으로부터 합격 통보도 받았는데 기준에 맞지 않다고 해 황당하다”고 하소연했다.

소비자연맹, 녹색소비자연대, 소비자시민모임 등 여러 소비자단체가 내놓은 ‘소비자 평가’에 대해 기업들의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제품 평가를 맡은 인증기관에 따라 평가 결과가 다르고, 오차가 많고, 검사가 일방적으로 이뤄진다는 불만이 대부분이다. 블랙박스, 공기청정기, 에어워셔, 폴리염화비닐(PVC) 바닥재, 로봇청소기 등 최근 발표된 것들의 대부분이 해당 업체로부터 항의를 받았다. 한국에서 소비자 평가는 ‘정부 주도’로 이뤄지고 있다. 물가가 불안했던 2008년과 2009년에는 ‘물가 안정’을 책임진 공정거래위원회가 소비자 평가 용역을 많이 줬다. 경제민주화와 동반성장이 화두였던 지난해에는 중소기업진흥공단이 ‘스마트제품 발굴 지원사업’ 명목으로 적극 나섰다.

공정위는 지난해 14건, 중진공은 8건의 ‘소비자 평가’ 용역을 소비자단체에 맡겼다. ‘품질은 비슷한데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싸다’거나 ‘중소기업 제품의 성능이 해외 유명 제품 및 대기업 제품과 비교해 차이가 없거나 오히려 우수하다’는 식의 평가 결과가 많이 나왔다. 소비자의 시각에서 냉정하게 평가하기보다는 정책 의도가 더 많이 반영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에 대해 최무진 공정위 소비자정책과장은 “외국에서는 소비자단체들이 품질평가 정보를 유료로 제공하고 이를 통해 수익을 내지만 한국에서는 유료로 보는 사람이 없다”며 “소비자단체에 예산을 주는 것은 맞지만 공익 차원에서 지원하는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이창섭 중진공 홍보실장은 “시민단체(소비자단체)와 협의해 조사 품목을 결정하는 것이 전부”라며 “결과 내용에 대해 의논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고 해명했다.

김병근/김희경 기자 bk1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