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라이프] 자나깨나 메모 메모 '공포의 노란 패드'…치밀한 일처리는 기록하는 습관 덕분

나의 성공 비결은 - 이희범 경총 회장

경제단체장 2관왕

무협 회장·경총 회장·LG상사 부회장…40년간 지켜온 성실함 꼼꼼함 때문
정동헌 기자 dhchung@hankyung.com
‘공포의 노란 패드.’

이희범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65)에게 15년째 따라 붙는 별칭이다. 노란 패드는 미국 3M사의 접착식 메모지 ‘포스트잇’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회장의 수첩에는 포스트잇이 빼곡하게 붙어 있다. 메모로 하루를 시작하고 다시 메모로 하루를 마치는 이 회장의 필수품이다. 그가 포스트잇을 처음 접한 때는 1999년 산업자원부(현 산업통상자원부) 차관보 시절이다. 꼼꼼한 메모광으로 소문난 그에게 지인이 포스트잇을 소개했고, 이후 이 회장은 포스트잇을 항상 품고 다닌다. 이 회장은 등산을 하거나 아내와 산책할 때도 수시로 포스트잇에 단상을 기록하곤 한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기 때문에 생각날 때마다 적어놓지 않으면 중요한 일을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첩의 ‘노란 패드’에는 ‘김OO에게 연락’ ‘이OO에게 지시사항 확인’ 등의 문구가 깨알같이 적혀 있었다.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글씨체가 흔들린 것도 있다. “이건 자다 일어나 깜깜한 방안에서 적은 겁니다. 자고 아침에 일어나면 잊을까 봐 비몽사몽 상태에서 부랴부랴 적은 것이죠.”

‘미국 연도별 국내총생산(GDP)’ ‘노사분규 현황’ 등 각종 지표와 통계수치가 적힌 포스트잇도 있다. 이 회장이 회사 안팎에서 ‘숫자의 달인’으로 불리는 이유다. 관료 시절 치밀한 일 처리도 따지고 보면 적고 기록하는 습관에서 비롯된 것이다. 산자부 차관으로 재직할 때도 석탄과장만 10년을 지낸 후배의 수치를 바로잡아 준 것은 잘 알려진 일화다.

경총 관계자는 “매월 1회 열리는 회의 때 ‘노란 패드’가 탁자에 턱 놓이면 본부장들은 잔뜩 긴장하곤 한다”며 “각종 사안에 대해 구체적인 숫자까지 꿰고 있는 까닭에 담당 본부장이 곤혹스러울 때가 많다”고 귀띔했다.

이 회장은 산자부 차관과 한국생산성본부 회장, 서울산업대 총장, 산자부 장관 등을 두루 거치고 한국무역협회장과 경총 회장 등 경제단체장 2관왕이라는 타이틀도 갖고 있다. 지난해 11월 말에는 LG상사의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선임됐다. 이 회장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어떤 자리에 가고 싶어 부탁을 한 적이 없다”며 “그럼에도 이렇게 일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갖게 된 건 1972년 행정고시 합격 후 상공부 사무관으로 일할 때부터 지금까지 40년간 지켜온 성실함과 꼼꼼한 메모습관 덕분”이라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LG상사 부회장으로 부임한 지 두 달가량 지난 지난 6일 경총 회장직 사의를 밝혔다. LG상사 경영에 집중하기 위해서다. 그는 “상사가 일이 많습니다. 출장도 잦고요. 항상 ‘을’이라는 자세로 임해야 성과를 낼 수 있습니다. 새롭게 시작할 사업도 많아 바쁜 한 해가 될 것 같습니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