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그녀에게 30분을 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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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마트 직원 영숙언니의 전화새해 시작은 인사전화와 문자로 늘 분주하다. 수많은 인사를 주고받는 중에 가장 기뻤던 일은 영숙언니의 전화였다. 언니는 우리 동네 대형마트의 직원이다. 정규직원은 아니고, 협력업체에서 파견한 비정규직이다. 그런 그녀가 드디어 오랜 꿈을 이뤘단다. ‘의원님~ 저 정규직 됐어요~’ 수화기 너머 영숙언니의 목소리는 구름 위를 걷고 있었다.
가장 기뻤던 새해인사 "정규직 됐어요"
김현미 < 민주당 국회의원 hyunmeek@daum.net >
2012년 유통업체연감에 따르면 대형마트는 전국에 465개, 매출은 38조원에 달한다. 최근에는 인구 10만~15만명 소도시까지 진출해 바야흐로 500개 대형마트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 우리 유통시장을 완전히 장악한 대형마트는 거대한 상품 판매처이자, 동시에 복잡한 고용형태의 집합소다. 회사가 직접 고용하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협력업체 파견직원, 외주업체 고용 사원 등등. 회사마다 차이는 있지만 전체 직원 중에서 직영 정규직은 6%, 직영 비정규직 15%, 파견과 도급직원이 80%로 우리가 만나는 직원 대부분은 비정규직이다. 비정규직의 절대다수는 영숙언니 같은 40~50대 여성과 20대 청년들이다. 시급은 5500원 내외, 한 달 급여는 수당 포함해 100만원 남짓이다. 그나마 길게는 2년, 짧게는 6개월 단위로 재계약을 해야 하니까 그들의 일터는 늘 조마조마한 상태다. 최근 국내 3대 대형마트 중 하나인 모 기업의 ‘0.5 시급제’가 화제다. 이 회사는 비정규직과 근로계약을 맺을 때 일반적인 8시간이 아닌 7.5시간 계약을 한다. 그래서 7시간 반만 일하느냐 하면 실제는 업무준비, 인수인계, 마무리 등으로 8시간을 훌쩍 넘게 일한다. 그럼에도 이 기이한 ‘7.5시간 계약제’를 시행함으로써 회사는 30분간의 시급과 초과수당을 알뜰하게 회피(?)할 수 있었다. 전체 1만6000명 비정규직의 30분 시급을 모두 모으면 1년에 113억원. 1인당 70만원꼴이다.
회사는 부담이 커 폐지하지 못하겠다고 버티고 있다. 1996년 처음 문을 연 이 회사는 최근 점포 137개, 2012년 매출 12조원, 영업이익 5500억원을 달성했다. 가히 경이로운 성장이다. 이 같은 급성장에는 대자본과 탁월한 경영능력이 있었겠지만, 불안한 고용조건 속에서도 매일 30분씩 헌납한 비정규직의 공도 포함돼 있다. 이제 30분을 돌려줄 때가 됐다. 영숙언니처럼 정규직으로 전환시켜주지는 못할망정 매출 12조원짜리 회사가 비정규직 시급 30분을 떼어먹는다는 것은 남이 알까 민망한 일이다. 법적으로도 문제이고.
김현미 < 민주당 국회의원 hyunmeek@daum.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