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대통령의 언어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프랑스에 실용주의 바람을 불어넣은 사르코지 전 대통령은 추상명사 대신 동사를 많이 썼다. 대선 슬로건부터 ‘더 일하고 더 벌자’라는 동사형이었다. 리비아 원수 카다피의 방문에 반대하는 지식인들을 “남들 일할 때 커피나 홀짝이는 카페 엘리트”라고 받아친 뒤 146억달러(약 13조5795억원)어치의 여객기와 전투기를 판매하면서 프랑스를 ‘생각하는 나라’에서 ‘일하는 나라’로 바꿨다.

미국 대통령들은 강력한 정치적 의지를 표명할 때 ‘결코 쉬지 않을 것(will not rest)’이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8년 내내 테러와 전쟁을 벌였던 조지 W 부시는 “위험이 제거될 때까지 쉬지 않고, 지치지 않으며,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40여차례나 했다. 미 CBS방송은 이를 두고 “미국 대통령들이 빨리 늙는 것은 고민이 많은 탓도 있지만 ‘결코 쉬지 않겠다’는 화법 때문”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오바마는 ‘연설의 달인’으로 통하지만, 가끔 입을 다무는 것으로 더 많은 말을 한다. 2011년 총기 희생자 추모연설 때는 ‘51초 간의 위대한 침묵’으로 전 국민에게 진한 감동을 주었다.

대통령 재선 TV토론 땐 롬니에게 무참히 당하면서도 ‘말 펀치’를 날리지 않았는데 이로써 자기 편을 뭉치게 하고 상대의 반란표도 끌어왔다.

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방식으로 성공한 지도자는 윈스턴 처칠과 빌리 브란트, 조지 W 부시 등이다. 조지 부시와 프랑수아 올랑드, 마오쩌둥은 화려한 말보다 진정어린 태도로 마음을 움직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의미의 재규정’에 뛰어난 능력을 보여 ‘조국 근대화’와 ‘민족중흥’이라는 용어로 경제성장을 이끌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연설 후 ‘말씀 자료’를 내려 놓고 “이제 내 얘기 좀 하자”며 공식언어와 일상언어를 구분지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일상언어로 인기를 끌었지만, 서해 북방한계선을 ‘땅따먹기’에 비유하거나 ‘군대 가서 썩지 마라’는 등의 막말로 점수를 까먹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화법은 또박이형이다. 밤 늦게까지 보고서를 탐독하고 장관들에게 전화로 현안을 확인하는 모범생 그대로다. 그저께 신년 기자회견에서 가장 많이 쓴 단어는 ‘경제’(51회)였고 다음이 ‘기업’(38회)이었다.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은 모두발언 전체의 3분의 2에 달했다. 이를 보면 국정 이정표가 더 분명해진다. 그 사이에 “통일은 대박”이라는 일상어까지 사용한 걸 보면 야권이 지적하는 ‘딱딱한 어법’도 조금씩 달라지는 듯하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