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철도 노조가 풀어야 할 숙제

"반대할 명분 없는 철도 경쟁 도입
이젠 노조가 철도사업 경쟁력 높여
민영화 주장을 일축하는 성과 내야"

박영범 < 한성대 교수·한국직업능력개발원장 >
수서발 KTX를 운영하는 코레일 자회사 설립을 반대해 발생한 철도파업이 22일 만에 종료됐다. 수서발 KTX 회사 설립을 철도산업의 민영화로 규정한 철도노조의 파업은 2002년 발전노조의 발전산업 민영화 반대 파업과 비슷하다. 당시 발전노조는 전력산업 민영화를 반대해 발전회사 5개 노조가 가스공사 노조 등과 함께 파업투쟁을 전개했으나 38일 만에 백기 투항했다.

철도파업은 법원이 파업을 주도한 노조집행부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한 것에서 보듯이 불법파업이었다. 박근혜 정부의 법과 원칙 준수에 대한 의지는 그 어느 정부보다 강력하고, 민영화 이슈는 일반 국민에게 그렇게 피부에 다가오지 않기 때문에 철도노조의 파업 철회는 시간 문제였지 예견된 것이었다. 발전노조 파업보다도 일찍 종료된 것은 시대분위기의 변화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민주노총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파업종료를 결정한 철도노조 위원장의 용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민영화를 둘러싼 한국 사회의 담론은 탁상공론의 성격이 짙다. 철도사업과 같은 핵심 기간산업의 민영화는 우리 경제가 민간주도로 전환된 이후 찾아보기 힘들다. 포스코처럼 민영화됐다 하더라도 경제구조 특성상 특정 개인에게 소유권을 이전하기 어려운 것이 우리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의 보혁 갈등같이 민영화를 둘러싼 격렬한 찬반논란은 사실 30~40년 전 영국의 대처, 미국 레이건 시대의 프레임에 갇혀 있는 것과 같다. 민영화의 장점과 폐해는 민영화 범위 자체가 논란거리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이나 다른 나라의 사례를 통해 잘 알려져 있으며, 장점을 살리면서 부작용을 최소화할 방안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이번 수서발 KTX 자회사 설립과 같은 철도 경쟁체제의 도입은 반대할 뚜렷한 명분이 없으며 국민이 보기에는 제 밥그릇을 지키기 위한 고집 센 투쟁이었을 뿐이다. 자기 이익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것을 나무랄 수는 없지만 국민이 주인인 기업에서 법을 지키지 않는 것이 이번 철도노조가 별 소득 없이 파업을 접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다.

또 철도파업이 조기 종료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적지 않은 국민이 불편을 겪었지만 파업에 따른 직접적 손실이 예상보다는 크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류나 여객 수송에 철도를 대체하는 수단이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파업의 참가 여부와 관계없이 이번 철도파업을 겪으면서 코레일 직원들의 마음고생이 제일 심했을 것이다. 복귀시기, 파업의 참가 정도에 따라 징계의 경중이 달라질 것이기 때문에 코레일 내부의 갈등은 상당기간 지속될 것이다.

이제 철도 노사는 철도사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파업에 따른 후유증도 극복해야 한다. 경쟁체제 도입을 반대해 발생한 철도파업이 역설적으로 철도사업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 경쟁체제가 도입돼야 한다는 것을 국민이 알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코레일의 적자가 과거로부터의 구조적인 요인도 있지만 운영의 효율성이 제고돼야 한다는 것을 보여줬다. 적자임에도 불구하고 민간부문 기업과는 달리 중간직급까지 승진이 자동적으로 되고, 본인 동의 없이는 전보도 어려우며, 임금은 지속적으로 올랐고 급여 수준도 상당히 높다는 것까지 알려졌다.

아시아나항공이 설립돼 대한항공의 독점체제가 무너졌을 때 국내 항공시장의 협소함으로 인해 공멸의 위험성이 거론됐으나 대한항공의 서비스에 질적인 변화가 있었고, 경쟁하면서 두 회사 모두 세계적인 항공사로 도약할 수 있었다. 철도 노사는 수서발 KTX 회사 설립을 철도사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기회로 삼아, 앞으로 효율성 제고를 위해 민영화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근거가 없음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박영범 < 한성대 교수·한국직업능력개발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