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규제혁파, 대통령은 외치고 장관들은 꼼수 두고

박근혜 대통령이 신년 회견에서 또 한번 규제혁파 의지를 천명했다. 규제총량제도 언급했고, 총리가 주재해온 규제개혁위원회를 규제개혁장관회의로 격상시켜 직접 챙기겠다고도 했다. 보건·의료 교육 관광 금융 소프트웨어 업종이 완화대상으로 구체화됐다. 하지만 대통령만 광야에서 혼자 외치는 것같다. 무엇보다 장관들에게 규제철폐의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다. 규제권력을 쥔 공무원들에 포위돼 있거나 부처이기주의에 함몰돼 있기 때문이다.

총리실이 전면적인 규제일몰제를 발표한 게 불과 보름 전이다. 그러자 미래부는 잽싸게도 제조원가 자료를 억지로 내놓으라는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을 3년 한시운용이란 묘수로 규제일몰제에 넣어 통과시키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이러니 하나를 없애면 두 개가 새로 생기는 게 규제다. 규제를 총량제로 묶으려면 적어도 영국 정도는 해야 할 것 같다. 영국은 2011년 ‘원인 원아웃’(One in One out·한 건 신설 때 한 건은 철폐)에서 지난해엔 ‘원인 투아웃’(One in Two out·한 건 신설하면 반드시 두 건 철폐)으로 강화했다. 특정 시점까지 규제철폐 목표량을 설정하는 규제혁파 특별법이라도 만들어야 한다.

국회의원들을 앞장세우는 청부입법, 의원입법은 더 문제다. 의원입법은 규제심사 과정이나 공청회 절차가 생략되는 등 날림으로 만들어진다. 19대 국회 1년7개월 동안 8596건의 법안이 발의됐고 이 중 8054건이 의원입법이다. 행정부의 청부 입법이 수두룩하다. 우박처럼 쏟아지는 경제민주화 입법은 더욱 그렇다. 19대 발의 법안의 15%가 경제민주화와 연계된 규제법안이라는 조사도 있다. 이 모두 과도한 의회권력의 산물이다. 세밑에 통과된 신규 순환출자금지법 등이 전형적인 사례다. 이런 규제악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 규제혁파 단어에 대한 내성이 너무 강해졌다. 충격요법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