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과 맛있는 만남] 남궁훈 게임인재단 이사장 "영어·수학보다 더 중요한 공부가 게임"

지하철 가면 온통 '애니팡'…2년전만 해도 예상했나
게임은 해피 바이러스 전파…'게임 경험=경쟁력' 시대 올 것
앞으로 게임 고등학교 설립해 진정한 '게임인' 양성하고파
미래엔 체중계도 게임이 될 수 있죠. “다이어트 워(war)라는 게임을 만들어 나랑 몸무게가 비슷한 사람끼리 다이어트 경쟁을 시켜 순위를 매겨주는 거예요. 1등 한 사람은 어떻게 몸무게를 뺐는지 비결을 공유하고요. 이런 기획을 게임을 안 해본 아이들이 낼 수 있을까요.”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남궁훈 게임인재단 이사장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은 그의 모습을 잊기 힘들다. 빡빡머리에 커다란 잠자리 안경, 아이처럼 장난기 가득한 얼굴은 기업인보다 예술인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다 그의 이력을 보게 되면 다시 한 번 놀란다. 한게임(현 NHN엔터테인먼트) 공동창업자, NHN USA 대표, CJ인터넷 대표, 위메이드엔터테인먼트 대표 등 크고 굵직한 회사의 대표만을 쉼없이 맡아왔기 때문이다. 인터넷·게임업계에서 그만큼 많은 회사의 대표를 맡은 인물을 찾기 힘들다. 누구와도 잘 어울리는 서글서글한 성격과 한 번 정한 일은 어떻게든 밀고 나가는 추진력이 그의 강점이란 평가다. 한게임이 국내에서 처음 게임 포털이란 시장을 개척해나갈 때, 게임사업에 뛰어든 CJ그룹이 이를 주요 사업으로 키우려 할 때, 위메이드가 모바일게임 시장에 뛰어들 때 그가 항상 최전선에 있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좋아하는 일을 좇아 왔을 뿐”이라고 비결을 말하는 남궁 이사장을 그의 단골집인 서울 청담동 이자카야 ‘도화’에서 만났다.

○태평양에서 자란 자유로운 영혼

도화는 강레오 셰프와 배우 이수경 씨가 함께 지난해 10월 문을 연 일식집이다. 남궁 이사장은 모둠회를 시키며 “CJ에 있을 때 가수 박선주 씨와 친해졌다”며 “박씨가 강 셰프의 아내”라고 소개했다. “원래 청담동 이자카야에선 비싼 사케만 파는데 여기는 한국 강소주도 팔거든요. 부담 없이 먹을 수 있어서 ‘청담동 투다리’라고도 불려요.” 애피타이저로는 ‘천엽 샐러드’가 나왔다. 참기름과 상큼하고 매콤한 맛의 유즈코쇼를 곁들인 이 샐러드는 이 집만의 별미라고 했다.

그의 아버지는 수산청 파견 외교관이었다. 그런 연유로 그는 고등학교를 태평양의 사모아와 하와이 두 곳에서 다녔다.

남궁 이사장의 자유분방한 성향은 드넓은 태평양을 바라보며 자란 덕분일까. 그는 처음 고등학교에 들어가 겪은 일화를 소개했다. “세계사 시험이었어요. 한국에서처럼 책을 외워 그대로 써서 냈어요. C가 나오더군요. 선생님에게 따졌더니 질문에 뭐라고 쓰여 있느냐는 거예요. ‘What do you think?’ 정말 충격이었어요. 내가 무슨 생각을 해도 되는구나, 내가 생각한 대로 써도 되는구나, 새삼스레 깨달았어요. 그때부터 좀 엉뚱한 생각, 틀에서 벗어난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아요.” 그의 인생을 좌우하게 된 또 다른 사건은 대학(서강대 경영학과) 때 벌어졌다. 아르바이트로 택시 운전과 여행사 가이드를 하면서다. “택시 운전은 힘들었어요. 회사에서 주는 가스 충전비는 항상 부족했고 술 취한 손님이 토하기라도 하면 더 암담했죠. 군 제대 뒤엔 여행사 가이드를 했는데 이런 일이 있나 싶었죠.” ‘돈 벌기가 이렇게 쉬워도 되나’ 싶었다는 것이다. “직장인 누나들 데리고 해외 나가서 사진 찍어주고, 같이 놀다가 오면 월급이 들어와 있더라고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돈을 벌 수 있구나. 그러면 이제 내가 좋아하는 일만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그가 1997년 첫 직장으로 삼성SDS에 들어간 것도 회사에서 PC통신을 마음껏 해도 혼나지 않으리라는 단순한 이유에서였다. 게임업계에 뛰어든 것도 게임이 좋아서였다. 그는 학창 시절부터 PC게임인 ‘삼국지2’와 ‘쥬라기공원’에 푹 빠진 게임 마니아다.

○“미래의 게임보고 법 만들어 달라” 모둠회와 참치 다다키가 테이블 위에 남아 있었지만 남궁 이사장은 “이 집은 사실 과메기가 제일 맛있다”며 과메기를 주문했다. 포항에서 직접 말려서 가져와 신선하다는 설명이다. 과연 꾸덕꾸덕한 살이 약간의 기름기와 어우러져 씹히는 맛은 일품이었다. 마침 식당에 나와 있던 박선주 씨를 발견한 그는 “우리 과메기 많이 줘”하고 소리쳤다.

이야기는 자연스레 게임 규제로 넘어갔다. 그는 위메이드 대표를 맡고 있던 작년 1월 “인터넷게임중독 예방에 관한 법률안에 항의하는 의미로 2013년 부산에서 열린 국제게임전시회 지스타에 참가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많은 게임사가 동참하며 규제에 항의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계기가 됐다.

“제가 문과 출신이잖아요” 하며 너털웃음을 터뜨린 그는 금방 진지한 얼굴로 돌아섰다. “게임 업계의 리더라는 사람들이 아무 말도 않고 가만히 있는 게 후배들에게 창피했어요. 한번 시작하니 계속 책임감이 들고, 그러다 게임인재단까지 오게 됐네요.” 그는 신의진 의원을 비롯한 규제법 입안자들을 나쁘게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무엇을 걱정하는지 안다고 했다. 하지만 “과거의 게임, 현재의 게임이 아니라 미래의 게임을 보고 법을 만들어 줬으면 한다”는 게 그의 당부다.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에 한글 창제를 반대해 투신자살하는 성균관 유생이 나와요. 그 유생이 지금을 보면 자기 죽음이 얼마나 허망하고 기가 찰까요. 성균관 유생이 나쁜 사람인가 하면 그렇지도 않아요. 그 사람은 한글 창제가 중국을 괜히 자극하고 사회구조를 무너뜨리는 일이라고 굳건히 믿었을 뿐이에요.”

게임 이야기를 하자 그는 신난 표정을 지었다. 목소리도 높아졌다. “저는 미래의 게임을 봐요. 2~3년 전만 해도 시장의 노점상 아주머니가 ‘애니팡’을 하고, 택시 운전사가 대기하면서 ‘윈드러너’를 하는 세상이 올 거라고 생각이나 했을까요. 이것은 굉장한 변화예요.”

미래엔 체중계도 게임이 될 수 있다고 말을 이었다. “다이어트 워(war)라는 게임을 만들 수 있어요. 나랑 몸무게가 비슷한 사람끼리 다이어트 경쟁을 시켜 순위를 매겨주는 거예요. 1등 한 사람은 어떻게 몸무게를 뺐는지 비결을 공유하고요. 이런 기획을 게임을 안 해본 아이들이 낼 수 있을까요.” 모든 것에 게임적인 요소가 접목되는 세상이 오면 게임을 해본 경험이 경쟁력으로 떠오를 것이란 얘기다. “어떻게 보면 게임이 영어 수학보다 더 중요한 공부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그가 이렇게 생각하는 데는 자신의 경험도 한몫했다. 삼성SDS 시절 그는 해군의 프로젝트를 맡았다. 바다 위에 함정을 배치하고 가상의 전투를 벌이는 프로그램이다. 학생 시절 ‘커맨드 앤 퀀커’라는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을 했던 경험을 살려 기획을 했고, 그게 지금도 국방부에서 쓰이고 있을 거라고 했다. “게임이지만 사이버전을 해 본 사람이 제가 유일했죠. 그저 게임을 즐겼을 뿐인데 그런 식으로 쓸모가 있더라고요.”

○나이 마흔 넘어 고등학교 선생님이 꿈

소고기 화로구이와 샤부샤부를 먹을 때쯤이었다. 배우 김수로 씨가 얼굴을 내비쳤다. “어, 형 나랑 옷 똑같은 거 입었네.” 특유의 말투로 반갑게 인사했다. 친구 사이라고 했다. 그는 남궁 이사장과의 친분으로 게임인재단 문화자문위원을 맡았다. 남궁 이사장은 “게임인들에게 문화공연 할인혜택을 주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며 “공연 보라고 한 시간만 일찍 퇴근시켜 줘도 굉장히 좋아한다”며 자랑했다.

고기를 직접 굽던 그는 ‘게임인’이란 말에 얽힌 애정을 드러냈다. 영화계 사람들이 자신들을 영화인이라 부르는 게 부러웠다고 했다. 그는 “단순히 ‘게임업계 사람’이 아니라 ‘게임인’이란 말을 통해 하나의 문화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사람이란 자부심을 느꼈으면 했다”고 설명했다. 그가 감자, 파프리카 등과 함께 작은 화로에 살짝 구워준 한우 살점을 씹자 달콤한 육즙이 입안을 적셨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그는 게임 고등학교를 세우고 싶다고 했다. “2011년 CJ를 그만두면서 앞으로 뭘 할까 생각했어요. 어릴 적 꿈 중 하나인 고등학교 선생님이 떠올랐어요. 제가 위메이드로 간 것도 박관호 위메이드 의장이 자기를 도와주면 재단을 세워주겠다고 해서였죠.”

궁금증이 생겼다. 그를 대표로 스카우트하려는 게임사가 나타난다면 어떻게 할까. 그가 매번 회사를 그만두고 쉬려 할 때마다 그를 탐내는 회사들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남궁 이사장은 손사래를 쳤다. “게임인재단에만 집중할 거예요.” 하지만 잠시 생각을 하더니 말을 덧붙였다. “그렇지만 누가 재단에 100억원을 기부해준다면 제가 가겠습니다!”
남궁훈 이사장의 단골집 도화…스타 셰프 강레오가 개발한 천엽샐러드 별미

스타 셰프 강레오가 서울 이태원동의 양식 레스토랑 ‘화수목 바이’에 이어 청담동에 두 번째로 연 다이닝 이자카야. 배우 이수경 씨와 함께 지난해 10월 문을 열었다.

식재료 본연의 맛을 100% 살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정갈하고 깔끔한 맛이 돋보인다. 생선회와 초밥, 전골, 일본식 화로구이와 같은 정통 일식부터 강 셰프가 개발한 다양한 퓨전 요리를 맛볼 수 있다. 소고기 화로구이와 천엽샐러드가 인기 메뉴다. 분리된 공간이 많아 방해받지 않고 이야기를 나누기에 좋다. 모둠 초밥(5피스)은 1만6000원. 도화도시락 3만5000원. 모둠회 6만6000원. 모둠회와 모둠 소고기화로구이, 샤부샤부로 구성된 세트는 12만5000원이다. 영업시간은 오후 6시~새벽 3시. (02)6335-0115

임근호/김보영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