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설의 '경영 업그레이드'] 블루오션의 추억

권영설 편집국 미래전략실장 yskwon@hankyung.com
꼭 10년 전인 2004년 1월 한국경제신문에 가치혁신연구소를 설립했다. 필자가 소장이었다. 이 연구소가 기획·취재해 한경에 연재한 시리즈가 ‘가치혁신 시대를 열자’였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21세기 들어 새로운 변화의 단초를 찾던 수많은 기업인들이 가치혁신(Value Innovation)이론에 열광했고 삼성전자의 VIP(Value Innovation Program)센터의 성공사례가 소개되면서 가치혁신이 전국적인 화두가 됐다.

이 이론을 공동주창한 김위찬, 르네 마보안 교수(인시아드 경영대학원)가 다음해 가치혁신론을 집대성해 단행본으로 묶은 ‘블루오션전략’을 출간하면서 한국은 물론 전 세계가 푸른 물결에 출렁거렸다. 열풍 이후 10년 무엇을 남겼나

그런데 지금 블루오션을 생각하면 이미 오래된 일이고 흔적도 별로 남아 있지 않은 추억처럼 느껴지는 건 왜일까. 무엇보다 우리가 너무 열광한 것이 문제였다. 방법론만 잘 익히면 금방 새로운 대형사업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 시각 자체가 처음부터 잘못된 발상이었다.

그래도 성과는 있었다. 블루오션 이전까지 사업을 추진하는 기준은 ‘다른 회사들이 참여하고 있느냐’ 여부였다. 괜찮은 회사들이 진출한 분야라야 시장성이 있고 ‘먹을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블루오션 이후엔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사라졌다. 오히려 다른 회사들이 하고 있는 사업은 이미 가격경쟁 정도밖에 남지 않은 레드오션 시장으로 보는 전략적인 자세를 우리는 갖게 됐다. 새해 들어 재계 총수들이 던지는 화두를 보면서 블루오션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재계의 올해 키워드는 생존, 위기, 변화, 혁신 등으로 요약해 볼 수 있다. 한마디로 이대로 사업해서는 안 되고 새로운 변화를 추구해 혁신 제품, 혁신 서비스를 만들어야 생존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미 안 해본 것이 없을 정도로 많은 경영혁신활동을 추진해온 기업들로서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새로운 방향성의 설정, 즉 전략이다.

'경계를 넘어서' 새로운 화두로

블루오션전략의 핵심은 기존의 경계(boundary)를 허무는 전략적 시각이다. 지금의 시장, 업종, 제품군, 경쟁구도를 재정의해야 한다는 얘기다. 새로운 분야는 지금까지 해오던 분야와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해오는 분야의 경계를 허물 때 새롭게 나타나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아이튠으로 음악산업을 재정의했다. 그것은 음악산업과 통신산업의 경계를 허문 시각의 승리였다. 업(業)을 넘나드는 자유로운 사고라야 새 시장을 본다는 것, 다른 업종의 고객들을 어떻게 하면 우리 고객으로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해야 한다는 것 등이 바로 블루오션이 남긴 숙제들이다.

벽을 넘어서는 도전을 하기 위해서는 그 업종에 너무 깊숙이 박혀 있으면 어렵다. 오히려 변두리에서 방황하는 고독한 존재가 되는 게 낫다. 그래야 이(異)업종에 관심을 갖고 그들과의 교류 속에서 창조적 스파크가 일어나는 것이다. 지난해 나온 의미 있는 영화 ‘클라우드 아틀라스’에서 감독은 주인공 배두나의 입을 빌려 이렇게 화두를 던진다. “모든 경계는 관습일 뿐이다. 넘어서는 사람이 나타나게 돼 있다.”

권영설 편집국 미래전략실장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