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획] 독일 1500여개 금융사, 中企 업종·성격 따라 맞춤형 금융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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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벽붕괴 25년 게르만의 비상 (7) '3-필러 시스템'으로 최적화된 금융한국은행 프랑크푸르트사무소는 지난해 5월 독일의 중소기업 지원 금융제도에 대해 조사했다. 하지만 결과는 “없다”였다. 대신 지역을 기반으로 한 수천 개의 중소형 금융사가 개별 중소기업의 업종과 성격에 맞춘 금융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 조사를 진행한 홍철 한국은행 차장은 “특별한 제도가 있는 게 아니라 금융시스템 자체가 중소기업 중심으로 설계됐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423개 저축銀·1091개 신협이 대형은행과 함께 독일금융 이끌어
독일에서 기업 인수합병(M&A) 컨설팅을 하는 루크리온의 김동승 사장이 구체적인 사례를 설명했다. 최근 금융 거래 과정에서 잠시 현금이 막혔지만 걱정할 이유가 없었다는 것이다. 10여년째 거래하고 있는 지역 신용협동조합이 있기 때문이었다. 처음 거래를 시작할 때부터 바뀌지 않은 대출 담당자는 김 사장의 계약서만 보고도 신용대출을 해줬다. 독일 금융사로는 도이체방크 코메르츠방크 등이 유명하지만 대형 금융사가 독일 금융시장(대출액 기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0%에 불과하다. 423개 저축은행이 41%, 1091개 지역 신협이 16%를 담당한다. 이들이 대형은행과 함께 독일 경제를 지탱하는 3개의 축, ‘3필러(pillar) 시스템’을 구성한다.
저축은행과 신협이 지탱하는 ‘3필러’
저축은행과 신협이 가지는 특징은 지역밀착형이면서 공적 성격이 강하다는 점이다. 신협 고객은 2600만명이며 조합원은 1700만명에 이른다. 독일 인구가 8114만명인 것을 감안하면 독일 인구의 절반 정도는 지역 신협과 관계를 맺고 있는 셈이다. 19세기 중반 조직돼 지역 농업 및 수공업 관련 기업을 중심으로 서민금융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저축은행 역시 이익 극대화가 아닌 경제활성화와 일자리 증진을 목적으로 설립됐다. 민간이 아닌 각 주정부가 설립을 주도했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을 비롯해 지역경제와 관련된 장기 대출을 담당한다.
재미있는 점은 이들의 중앙은행 역할을 하는 대형 금융사가 따로 있다는 점이다. 주정부가 지분을 절반씩 나눠 갖고 있는 7개 주립은행이 저축은행의 중앙은행 역할을 한다. DZ뱅크와 WGZ뱅크는 신협들이 출자해 세운 신협의 중앙은행이다. 2012년 말 현재 DZ뱅크의 자산은 4070억유로(약 590조원), 순이익은 9억6000만유로(약 1조4000억원)로 전년 대비 2배 성장한 것에서 보듯 이들 은행은 대형 금융사 못지않은 규모와 경영실적을 자랑한다. 이들 금융사는 유사시 일선 저축은행과 신협에 자금을 지원하는 것은 물론 펀드와 보험 등 개인 자산관리 서비스도 제공한다.
중소기업과 ‘관계금융’
이같이 다양한 금융사의 공존은 중소기업에 유리한 금융 생태계를 형성한다는 평가다. 은행과 기업이 장기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독일 특유의 ‘관계금융’도 이 같은 토양에서 가능하다. 2007년부터 2012년까지 5년간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한 저축은행과 신협의 5년 이상 장기 대출 증가율은 60%를 초과해 단·중기 대출 증가율을 압도했다.
헤센주와 튀링겐주가 공동으로 세운 주립은행 헬라바의 헨리히 크란츠 기업금융 부행장은 “금융회사가 많은 만큼 기업에는 더 많은 선택지가 생긴다”며 “이쪽 은행에서 돈을 빌려주기 힘든 기준이 다른 금융사의 관점에서는 대출 가능한 기준이 되는 등 최적화된 모델을 찾을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본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도록 해 관련 리스크를 기업이 지도록 하는 것이 미국식 모델이라면 독일은 금융사의 장기적인 대출을 통해 리스크를 분담하는 구조”라고 덧붙였다.
지역에 기반해 영업하다보니 무리한 사업을 최소화해 안정적인 여신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점도 특징이다. 독일 금융사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총자산 비중은 영국에 크게 못 미치지만 금융위기 이후 대출 증가율은 빠르게 회복했다. 노영진 산업경제연구센터 연구위원은 “독일 금융 시스템은 효율성에서는 뒤처지나 대출 분야의 안정성 및 복원력은 강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장기적인 관계를 중요시하는 은행들의 거래관행이 업력이 짧은 신생기업에 불리하다는 지적이 있다. 한국이 벤치마킹하기도 한 ‘온렌딩(on-lending)’을 통해 독일재건은행이 저축은행과 신협의 벤처기업 대출을 지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금융사가 난립하면서 효율성이 낮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에 신협은 1990년 3344개에서 1000여개 수준으로 대폭 감소, 저축은행도 700개에서 420여개 수준으로 줄어들며 자체 구조조정이 이뤄지고 있다.프랑크푸르트=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
한경·포스코경영연구소 공동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