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사', 꼬마탐정이 파헤치는 실종 미스터리

뮤지컬 리뷰
영국 추리소설가 아가사 크리스티(1890~1976)는 1926년 12월3일 홀연히 사라졌다. 집 근처 호숫가에선 크리스티의 자동차와 값비싼 모피가 버려진 채 발견됐다. 베스트셀러 작가로 명성을 떨치던 여류 추리소설가의 실종은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다. 자살설과 남편에 의한 타살설, 책을 더 팔려는 출판사의 음모설 등 온갖 루머가 떠돌았다.

실종 11일째, 크리스티는 집에서 멀리 떨어진 호텔에서 발견됐다. 그는 기억상실을 호소하며 11일간의 행적에 대해 당시에도, 그 이후에도 굳게 입을 다물었다. 어머니의 죽음과 남편의 외도 및 이혼 요구 등에 따른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심인성 기억상실증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장충동 동국대 이해랑예술극장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아가사’는 실제로 일어났던 ‘추리소설 여왕’ 크리스티의 실종 미스터리를 연극적 상상력을 발휘해 흥미진진하게 재구성했다. 한지안 극작, 허수현 작곡, 김태형 연출의 창작 초연물이다.

같은 소재를 영화화한 더스틴 호프먼 주연의 1979년작 ‘아가사’에서 실종 사건을 추적하는 가상의 인물로 크리스티를 인터뷰하기 위해 미국에서 건너온 기자를 등장시켰다면, 뮤지컬에선 이웃에 살던 꼬마 탐정 레이몬드가 나온다. 1952년 크리스티의 60번째 출간을 앞두고 레이몬드가 26년 전 실종 사건을 파헤치는 형식이다.

극은 ‘미궁 속의 티타임’이란 가상의 작품과 영웅 테세우스의 미궁 신화를 통해 크리스티의 삶과 내면을 깊이 있게 파고든다. 평범한 사람이 타인들과의 관계 속에서 살의를 품은 괴물로 변할 수 있음을 극적으로 보여주고 경계한다. 미스터리 형식의 이야기 전개가 탄탄하고, 드라마와 음악의 결합도 무난하다. 조금 헷갈리기는 하지만 복잡한 극적 구조를 효율적으로 표현하는 연출 솜씨와 무대 구성도 수준급이다. 톡톡한 연극적 재미를 준다.

신비한 인물인 로이의 정체가 드러나는 반전의 묘미가 약하고, 마무리 부분이 싱겁지만 큰 흠은 아니다. 연기와 음향 등 퍼포먼스와 무대 환경의 미진한 부분은 창작 초연과 공연 초기임을 감안하면 개선의 여지가 많다. 중소형 창작 뮤지컬로서 ‘롱런’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엿보이는 작품이다. 크리스티 역에 배해선과 양소민, 로이 역에 김수용과 진선규, 박인배가 번갈아 출연한다. 공연은 오는 3월2일까지, 4만4000~5만5000원.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