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예언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예언(豫言) 중에서도 가장 빈번한 것이 종말론이다. 999년 유럽을 휩쓴 심판론과 1966년의 ‘666’ 숫자 관련 종말론, 1999년 ‘Y2k 공포’와 결탁한 멸망론, 2012년 12월 마야종말설까지 사람들을 겁주는 예언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지난해에도 한 대륙에서 3개의 재앙이 겹쳐 종말을 맞을 것이라는 괴담이 예언이라는 이름으로 횡행했다.

동양에서는 오래 전부터 사주와 관상, 풍수 등의 점복신앙을 바탕으로 미래를 점쳐왔다. 모든 것을 점술에 맡기는 폐해가 심해지자 이를 경계하는 현인도 많았다. 맹자는 제자들의 질문에 답하면서 ‘사주(천시)는 풍수(지리)에 못 미치고 풍수는 노력에 못 미친다’고 했다. 경제예측 또한 ‘빗나간 예언’들로 점철돼 왔다. 내로라하는 학자들과 정부 기관들의 경제 예측치는 거의 대부분 틀렸다. 그런데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해마다 새로운 숫자를 또 내놓는다. 예언이란 신학적 용어로 ‘미래의 일을 미리 말하는 것’이고, 그 주체는 신의 말씀을 받아 인간에게 전하는 사람이다. 예언자는 구약성서의 아모스·미가·엘리아 등이 그랬듯이 신의 말을 알아듣고 전하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인간이다.

이들의 예언은 꼭 장래를 예견하는 것만이 아니라 율법에 따라 현실사회의 악이나 부정을 드러내고, 신의 충고를 널리 알리는 의미로도 쓰였다. 한편으로는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며 사익을 취하는 거짓 예언자들도 있다. 이들은 신의 이름을 팔며 권력과 결탁하고 대중이 좋아하는 말만 늘어놓는다. 신약성서의 마태복음에도 거짓 예언자라는 말이 나온다.

이른바 원시공산제에서 노예제, 봉건제, 자본주의를 거쳐 공산제로 갈 것이라는 마르크스의 예언도 처음엔 그럴듯했다. 비판적 합리주의로 유명한 철학자 칼 포퍼조차 한때 심취했을 정도다. 그러나 포퍼는 “젊어서 마르크스에 빠지지 않으면 바보지만, 그때를 보내고도 마르크스주의자로 남아 있으면 더 바보”라는 말로 마르크시즘의 오류를 일깨웠다. 사람들을 불안하게 하는 괴이한 말은 사회가 불안할 때 난무한다. 거짓 예언자들은 갈등과 대립을 부추길 뿐만 아니라 편가르기 수법으로 이를 악용한다.

그저께 정진석 추기경이 일부 사제의 사회적 발언을 언급하며 “중개자 노릇을 잘못하면 곧 거짓 예언자가 된다”고 지적한 것도 이 때문이다. 분열을 치유하는 방법 또한 ‘거짓 예언자의 욕심을 내려놓는 것’이라고 했다. 거짓과 욕심은 사심에서 나온다니, 더욱 깊이 새겨들을 말이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