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9호선처럼…맥쿼리, 우면산터널서도 쫓겨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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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 분석서울시가 우면산터널(서초동~우면동·2.96㎞) 운영사업자 우면산인프라웨이(주)에 대해 올해 상반기 사업자 지정을 취소하는 ‘공익처분’을 추진한다. 서울시는 이 회사 대주주(지분율 36%)인 맥쿼리한국인프라투융자회사에 대한 수입 보전이 혈세 낭비로 이어져 공익을 저해하고 있다는 판단에 따라 운영권을 회수해 시유화한 뒤 투자자를 새로 모집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는 맥쿼리와 맺은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는 것이어서 논란이 거셀 전망이다. ○서울시, 사업운영권 취소 카드
서울시 "수입 메워주다 혈세 낭비" 주주교체 추진
공익 앞세워 민간자산 市有化 논란…소송전 예고
서울시 관계자는 17일 “맥쿼리가 우면산터널 수익률 인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며 “주주 교체 등 연내 사업 재구조화를 마치기 위해 사업자 지정을 취소하는 공익처분을 추진하기로 태스크포스(TF) 회의에서 결정했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사회기반시설에 대한 민간투자법’ 47조에 따라 상반기 중 기획재정부 민간투자중앙위원회에 공익처분을 신청할 방침이다.
서울시는 지난해 초 구성한 ‘우면산터널TF’를 통해 맥쿼리와 실시협약 수정 협상을 두 차례 벌였지만 합의에 실패했다. 서울시는 발주 민자사업 중 우면산터널에 유일하게 남은 최소운영수입보장(MRG) 조항을 폐지하고, 연 8%대인 수익률을 4%대(명목수익률 기준)로 낮추는 조건을 제시했지만 맥쿼리가 거부했다. 2003년 맺은 실시협약은 양쪽이 동의해야 고칠 수 있다. 맥쿼리의 수정 거부에 대해 서울시가 공공이익 침해를 이유로 사업자 지정 취소 후 관리·운영권을 회수하는 공익처분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강운태 광주시장이 맥쿼리가 대주주인 광주 제2순환도로 1구간 항소심에서 승소한 후 공익처분 검토를 언급한 바 있으나 지자체가 공익처분을 추진한 것은 1999년 ‘사회기반시설에 대한 민간투자법’ 시행 이후 서울시가 처음이다.
○서울시-맥쿼리, 소송전 불가피
서울시는 맥쿼리에 대한 연간 수십억원의 재정보전금 지급에 따른 혈세 낭비로 공익이 심각하게 침해되고 있는 만큼 공익처분이 이뤄질 것으로 자신하고 있다. 2004년 1월 우면산터널 개통 이후 2011년까지 MRG에 따라 서울시가 우면산인프라웨이(주)에 지급한 보전금은 480억원에 이른다. 서울시는 맥쿼리로부터 운영권을 회수해 연내 투자자를 재모집하겠다는 방침이다. 맥쿼리 대신 한화생명 교보생명 등으로 투자자를 교체한 서울지하철 9호선과 비슷한 구도다. 시 관계자는 “저금리가 이어져 연 4%대 수익률에도 기관투자가들이 충분히 들어올 것”이라고 말했다.
맥쿼리 측은 “공식 대응이 어렵다”고 답변을 피했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서울시가 공익처분을 앞세워 맥쿼리를 압박하고 있다”며 “맥쿼리도 공익처분에 대해 소송 등을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우면산터널 법률자문을 담당하는 황창용 원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요금 기습 인상을 시도한 9호선과 달리 우면산터널은 맥쿼리에 분명한 귀책사유가 없어 서울시 승소 확률이 높지 않을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민간 자산 일방적 시유화에 논란서울시의 우면산터널에 대한 공익처분 방침은 맥쿼리가 국내에 투자한 다른 인프라 사업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맥쿼리는 부산 백양터널, 광주 제2순환도로 1구간, 인천국제공항 고속도로 등 13개 인프라 사업의 대주주다. 서울시를 비롯해 광주시 부산시 경남도 등도 MRG 조항에 따라 거액의 재정보전금을 맥쿼리에 지급하고 있어 혈세 낭비 논란이 일고 있다. 관련 업계는 다른 지자체들도 공익처분을 신청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보고 있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민간 자본을 유치할 때는 MRG 등 혜택을 줘놓고 이제 와서 공익을 이유로 민간 자산을 일방적으로 시유화하면 어떤 기업이 민자사업에 투자하겠느냐”며 “민자로 추진하는 서울시 경전철 사업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했다.
■ 공익처분
‘사회기반시설에 대한 민간투자법’ 47조에 따라 시설의 효율적 운영 등 공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지방자치단체가 민자 사업자의 관리·운영권을 취소하는 것. 기획재정부 민간투자중앙위원회 심의를 거쳐야 하며 심의를 통과하면 시설에 대한 관리·운영권을 지자체가 가진다.
■ 최소운영수입 보장 MRG·minimum revenue guarantee. 민간 자본이 투입된 사업의 실제 수익이 당초 예측 수익보다 적을 때 차액을 보장해주는 제도. 민간 사업자의 과도한 수입 보전으로 혈세가 낭비된다는 지적에 따라 민간 제안사업은 2006년, 정부 고시사업은 2009년 폐지됐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