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가창오리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가창오리의 화려한 군무(群舞)는 노을 질 때 가장 아름답다. 검붉은 하늘로 일제히 날아오르는 겨울 진객의 춤사위는 가히 환상적이다. 일필휘지로 갈겨 쓴 붓글씨처럼 순식간에 나타났다 사라지고, 뫼비우스의 띠처럼 다시 이어지는 무리춤은 한 폭의 진경산수화 같다. 가창오리는 낮에 천적을 피해 담수호에서 쉬고 해가 질 때쯤 낟알 등 먹이를 찾아 단체비행에 나선다.

사진 찍는 사람들은 이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하루 종일 기다린다. 군무를 보기 위한 일반 탐조객도 크게 늘었다. 그러나 귀한 장면을 보려면 조심해야 할 것도 많다. 새들은 시력과 청력이 매우 좋기 때문에 눈에 잘 띄는 원색 옷은 피하고 뛰거나 큰 소리를 지르지 말아야 한다. 가창오리 떼는 국내에서 월동하는 겨울철새 가운데 가장 큰 무리다. 적게는 20만마리에서 많게는 60만마리 이상이 단체로 이동한다. 무리를 짓는 것은 정보교환과 안전성, 효율성 때문이라고 한다. 우선 포식자의 공격을 빨리 알아차릴 수 있고 이를 동료들에게 빨리 알릴 수 있다. 공격을 당할 확률도 그만큼 줄어든다. 먹이와 물을 쉽게 발견할 수 있고, 번식기에는 같은 무리의 이성과 짝짓기도 안정적으로 할 수 있다니 그럴 법하다.

이들의 분포 지역은 러시아의 시베리아와 사할린 북부, 캄차카반도까지 꽤 넓다. 가창오리의 90% 이상이 한국에서 겨울을 난다. 매년 9~10월부터 수십만 마리가 날아와 서산 천수만, 금강 하구, 고창 동림저수지, 창원 주남저수지 등에서 춤추며 놀다 봄에 돌아간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해마다 공짜로 춤 구경하는 복 받은 관객이다.

그런데 지난 주말 고창 동림저수지에서 가창오리가 집단폐사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인근 고창과 부안 오리농장에서 조류인플루엔자(AI)가 발생한 직후였다. 전문가들은 떼죽음의 원인을 강력한 AI 바이러스로 보고, 이것이 오리농장에 영향을 미쳤는지 주시하고 있다. 가창오리는 면역력이 강해 고병원성 AI에도 문제가 없는데 떼로 죽었으니 강한 바이러스 침투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만약 원인이 AI라면 철새 이동경로에 있는 다른 농장들도 안심할 수 없다. 오리 사육농장이 많은 호남 지역에 ‘일시 이동중지’가 발령된 것도 이 때문이다. 세계적인 희귀조로 멸종위기 동식물 국제협약에 따라 보호받는 가창오리가 어쩌다 나쁜 병을 옮기는 ‘미운 오리’ 취급을 받게 됐는지 안타깝다. 차라리 병원균에 의한 집단폐사가 아니라 몇 십마리 정도의 자연사이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