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매운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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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

유래가 무엇이든, 고추의 매운맛은 이제 사실상 한국의 맛 그 자체라고 봐도 무리가 아니다. 우리나라 고추 소비량이 1인당 연간 4㎏으로 세계 최고 수준인 것만 봐도 그렇다. 매운 맛은 캡사이신이라는 성분 때문이다. 항산화, 항염은 물론 스트레스 해소와 다이어트에도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알려졌다. 캡사이신은 처음에는 맵게 느껴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뭔가 시원한 기분이 들게 하고 통증도 완화시켜 준다. 사실 매운맛은 맛이 아닌 통각이다. 캡사이신의 통증 완화 효과도 매운맛을 고통으로 인식한 혀가 뇌의 신경세포를 자극해 엔도르핀 분비를 활발하게 해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입에 불이 난 듯, 땀을 뻘뻘 흘리면서 매운 음식을 찾아다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고추는 150여종이 있는데 다 매운 것은 아니다. 파프리카나 오이고추(파프리카와 일반 고추의 교배종)처럼 맵지 않은 고추도 최근 많이 나온다. 고추의 매운맛은 스코빌 스케일(SHU)이라는 단위로 측정한다. 기네스북에 기록된 세계에서 가장 매운 고추는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서 재배된 ‘캐롤라이나 리퍼 페퍼’다. 이 고추의 SHU는 156만9300으로, 맵기로 유명한 청양고추(4000~1만SHU)는 물론 멕시코산 하바네로(30만SHU)도 울고 갈 정도다.
농진청 연구진이 매운맛의 기원을 찾아냈다고 한다. 고추의 유전체 염기서열 분석을 완료한 것이다. 국내 기술로 완성한 첫 번째 식물 유전체 표준 염기서열이다. 치열한 국제 유전체 연구 분야에서 한 발 앞서 나갈 전기를 마련한 셈이다. 고추는 전 세계 총생산액 144억달러, 교역량 30억달러에 달하는 유망 작물이다. 이번 연구를 계기로 고추 육종 개발에 ‘매운맛 종주국’다운 경쟁력을 갖추기 바란다.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