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패션산업 'SPA 쇼크'] '죽은 상가' 되살린 SPA의 힘…명동 유니클로 '쇼핑명소'로

(1) 해외 SPA의 질주

SPA 들어서면 20~30대 몰려
홍대 와이즈파크 등 '유령상가'서 '대박상가'로

루이비통 옆 H&M, 백화점서 '명품 대우'
< H&M 한정판 사려고 매장 열기 전부터 긴줄 > 유니클로, 자라, H&M 등 해외 제조·직매형 의류(SPA) 브랜드는 불황에도 높은 매출을 올리고 있다. H&M이 명 브랜드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와 손잡고 한정판 제품을 내놓은 지난해 11월15일 서울 명동 매장에 소비자 1800여명이 줄을 서 기다리고 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일요일인 지난 19일 서울 충무로2가 유니클로 명동중앙점. 1층부터 4층까지 3966㎡의 매장엔 손님들로 가득 차 있었다. ‘주말 특가’를 내건 할인상품을 집어든 뒤 셔츠, 바지 등 다른 제품까지 담아 계산대로 향하는 이들은 1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했다. 계산대에 늘어선 긴 줄에서 명동 상권의 제조·직매형 의류(SPA) 매장 중 매출 1등이란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죽어가던 상권도 살려낸다
유니클로 명동중앙점이 들어선 이곳은 3년 전만 해도 명동에서 ‘죽은 상가’로 통했다. 2006년 하이해리엇이란 쇼핑몰로 문을 열었지만 손님이 없어 휴업과 재개장을 거듭하고 있었다. 유니클로가 1~4층을 통째로 임대하자 분위기는 확 달라졌다. 개장 첫날(2011년 11월11일) 13억원어치를 팔아치우는 ‘대박’을 터뜨린 뒤 매출 1등 자리를 한번도 내준 적이 없다.

해외 SPA는 소비자들을 블랙홀처럼 끌어들이며 유령상가마저 살려내는 ‘괴력’을 과시하고 있다. 명동 눈스퀘어, 홍대 와이즈파크, 신림동 포도몰 등이 SPA에 힘입어 부활했다. 유니클로, 자라, H&M이 최근 지방 출점을 늘리면서 부산 광복로, 대구 동성로, 광주 충장로 등에도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이 때문에 건물주들 사이에선 유니클로를 유치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부동산 컨설팅회사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코리아의 김성순 이사는 “SPA는 보통 1층부터 여러 층을 한꺼번에 쓰기 때문에 임대수익이 안정적인 데다 상가 이미지를 높이는 효과도 커 건물주들이 좋아한다”고 전했다.

○20~30대 유인 효과 ‘톡톡’

신세계백화점 인천점엔 H&M이 명품 브랜드인 루이비통과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신세계가 명당으로 꼽히는 1층 자리를 내주며 H&M을 유치한 것이다. 백화점들은 이처럼 물불 안 가리고 SPA를 유치하고 있다. 백화점에 입점한 국내 패션브랜드가 평균 30%대의 수수료를 내고 있지만 SPA는 대부분 10%대를 내고 있다.

이런 파격적 대우는 SPA의 손님몰이 효과 때문이다. 롯데백화점이 지난해 매출을 SPA를 구입한 소비자(A그룹)와 SPA를 전혀 구입하지 않은 소비자(B그룹)로 나눠 분석한 결과, A그룹의 연간 방문횟수가 24회로 B그룹(8회)보다 세 배 많았다. 방문횟수가 월등히 많다 보니 결과적으로 연간 총 구매액은 A그룹 208만8000원, B그룹 83만2000원으로 2.5배의 격차를 보였다.

정윤석 롯데백화점 선임상품기획자(CMD)는 “요즘 백화점들의 가장 큰 고민이 ‘젊은 층이 백화점에 안 온다’는 것인데 SPA 매장은 이런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대안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자금력 앞세워 융단폭격 마케팅

삼성패션연구소에 따르면 국내 전체 의류시장에서 SPA 비중은 2008년 1.8%에서 지난해 8.5%로 급증했다. 싸고 질이 좋다는 것 말고도 탄탄한 자금력을 앞세운 마케팅 공세도 시장점유율 확대에 한몫하고 있다.

유니클로가 지난해 하반기 시작한 ‘카카오톡(스마트폰 메신저) 마케팅’이 대표적이다. 주말마다 품목을 바꿔가며 특가 할인상품을 홍보하는데, 해당 상품 판매량이 두 배 이상 뛰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종민 이랜드 스파오부문장은 “유니클로가 최근에는 강점인 가격경쟁력을 최대한 활용해 기존보다 ‘더 싸게’파는 최저가 전략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자라도 지난달 26일부터 대대적인 세일 행사를 벌여 매출을 전년 대비 25%가량 끌어올린 것으로 전해졌다. H&M은 유명 명품 디자이너가 만든 한정판 상품을 매년 선보여 매장마다 길게 줄이 늘어서는 진풍경을 연출한다.

삼성패션연구소는 “글로벌 SPA 브랜드들이 시장을 선점한 상황에서 후발주자들이 파이를 차지하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고 분석했다. 패션업계 관계자들은 해외 SPA의 모든 활동이 한국법인과 본사의 철저한 계산 아래 조직적이고 치밀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 SPA(제조·직매형 의류)패션업체가 상품 기획부터, 디자인, 생산, 유통, 판매까지 모든 과정을 일괄 처리하는 방식이다. 대량 생산과 유통 단계 축소로 옷값을 크게 낮출 수 있다. 유행에 발빠르게 대응한다는 점에서 패스트 패션(fast fashion)이라고도 불린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