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병사 이야기', 참신하고 기막힌 '햄릿 비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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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리뷰
셰익스피어의 걸작 ‘햄릿’의 첫머리 대사다. “거기 누구냐?”는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인 ‘자아 찾기’를 반영하는 의미로 해석돼 햄릿의 독백인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와 함께 ‘햄릿’을 대표하는 대사로 유명하다. 첫 대사를 주고받는 배역은 왕궁의 야간 보초를 서는 두 병사다. 이들은 작품의 화두를 던지는 역할을 담당하지만 처음에 잠깐 등장할 뿐이다.
서울 대학로 상상아트홀 화이트에서 공연 중인 연극 ‘두 병사 이야기’(사진)는 원작에선 존재감이 미약한 두 병사의 시선으로 ‘햄릿’을 들려준다. 권력에 대한 탐욕으로 빚어진 최상위층의 비극적인 사건이 하층민인 두 병사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연극은 상상력과 호기심을 자극하며 유쾌하고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보초를 서던 버나르도는 우연히 유령과 햄릿의 대화를 듣고는 동료인 프랜시스와 함께 선왕의 죽음에 얽힌 진실을 추리한다. 프랜시스는 이 진실을 이용해 한몫 잡을 궁리를 한다.
두 병사의 애환과 대립, 갈등, 화해를 햄릿 사건의 진행과 짜임새 있게 엮은 구성 및 작은 소극장 무대를 효율적으로 활용한 연출이 인상적이다. 하얀 광목으로 기저귀 빨래 널듯이 사방에 걸어놓은 무대는 두 병사의 막사였다가 클로디어스 왕이 속죄하는 기도실, 재상 폴로니어스가 살해되는 방으로 변한다. 두 병사는 햄릿과 레어티스, 클로디어스, 폴로니어스 등 다양한 배역으로 변신해 햄릿의 주요 장면을 재연한다. 버나르도 역의 박주용과 프랜시스 역의 박경주가 좋은 연기와 호흡을 보여준다.
‘햄릿’의 내용을 사전에 알고 보면 더 즐길 수 있는 무대다. 다만 프랜시스가 영국으로 건너가 셰익스피어가 돼 희곡 ‘햄릿’을 쓰고, 버나르도가 ‘로미오와 줄리엣’의 단초를 제공한다는 결말 부분은 좀 억지스럽다. 지난해 6월 서울연극협회가 주관한 열린 ‘2013 마이크로 셰익스피어’에서 작품상과 연출상을 받은 작품이다. 오는 31일까지, 2만5000원.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