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잔 밑 못본 시진핑…'부패와 전쟁' 힘 빠지나

"시 주석 매형 등 中고위층 1조달러 이상 해외로 빼돌려"

ICIJ 보도
원자바오·덩샤오핑 一家 등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
中 외교부 "보도 배후 의심"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20일 베이징에서 열린 제대군인을 위한 춘제 행사에서 참석자들과 악수하고 있다. 베이징신화연합뉴스
취임 이후 ‘부패와의 전쟁’을 강력하게 추진해온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뜻밖의 난관에 봉착했다. 시 주석을 비롯한 중국의 전·현직 최고위급 정치지도자의 친인척들이 역외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해 돈을 빼돌렸다는 의혹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2000년부터 조세피난처에 설립된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중국에서 해외로 유출된 자산은 1조~4조달러(약 1067조~4268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됐다. 페이퍼컴퍼니란 회사의 실체는 없으면서 서류상으로만 등록된 회사를 말한다.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는 22일 시 주석, 원자바오 전 총리, 덩샤오핑 전 주석 등의 친인척들이 역외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 같은 사실은 국내 인터넷언론 뉴스타파와 영국의 가디언 등이 동시에 보도했다. ICIJ는 지난 6개월간 조세피난처 페이퍼컴퍼니 설립 대행회사의 내부 고객관리 정보를 분석해 이 같은 사실을 밝혀냈다. 분석 결과 중국 본토와 홍콩 등에 소재를 두고 있는 중국인 총 3만7000명이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것으로 드러났다.

가장 눈길을 끄는 이는 시 주석의 매형인 덩자구이다. 그는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엑셀런스 에포트 프로퍼티’라는 이름의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했다. 시점은 시 주석이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있던 2008년 3월이다. 그는 이 회사의 대표이자 50% 지분을 가진 대주주로 등재돼 있다. 원 전 총리의 아들 원윈쑹과 사위 류춘향도 페이퍼컴퍼니를 세운 것으로 드러났다. 두 사람은 원 전 총리가 총리로 재직하던 2006년과 2004년에 각각 버진아일랜드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했다.

이들 외에도 덩 전 주석의 양자 우지엔창, 리펑 전 총리의 딸 리샤오린, 후진타오 전 주석의 사촌 후이시 등도 페이퍼컴퍼니 설립자 명단에 올라 있다.

이 밖에 부동산 투자회사 소호차이나의 장신 회장, 인터넷 기업 텐센트의 설립자이자 ‘중국의 빌 게이츠’로 불리는 마화텅 대표 등 중국의 갑부 16명도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했다. 가디언은 “중국 기업들은 본토에서의 각종 규제 때문에 홍콩 또는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해 활용하는 경우가 많으며 이는 합법적인 것”이라면서도 “페이퍼컴퍼니가 세금을 탈루하거나 재산을 빼돌리는 데 활용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한편 중국 외교부는 ICIJ의 보도에 대해 “배후의 의도가 의심된다”는 입장을 내놨다. 친강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나는 구체적인 상황을 알지 못한다”면서도 “그들(ICIJ)의 논리가 사람들을 납득시키기 어렵기 때문에 그 배후의 의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ICIJ의 의혹 제기가 사실로 드러날 경우 시 주석은 적잖은 정치적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시 주석은 취임 이후 줄곧 중점 개혁 과제로 부패 척결을 강조해왔기 때문이다.

김동윤 기자 oasis9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