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리한 조건 뒤집는' 협상의 기술…상대방이 '진정 원하는 것' 살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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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학 카페미국 대통령이었던 로널드 레이건은 원래 B급 영화배우였다. 정치판에 뛰어들어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지만 큰돈을 벌지는 못했다. 레이건이 낸시 데이비스를 만나 결혼하고 나서 보니 아내를 포함해 주변 이웃들은 모두 백만장자였다. 자존심이 강했던 레이건은 당장 회계사와 상담했고, 부동산에 투자하라는 말을 들었다. 레이건은 즉시 캘리포니아의 말리부로 가서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토지를 다량 구입했다. 몇 년 후 그는 대출금을 다 갚고 목장을 만들었다. 그러고는 그 목장을 시장에 내놓았다. 매물가격은 100만달러. 이 목장을 사겠다는 제안이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현금으로 95만달러를 주겠다는 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현금 90만달러와 30년 만기 정부 채권 10만달러로 100만달러를 지불하겠다는 제안이었다. 당시 이자율로 보면 정부 채권의 현재가치는 1만달러에 불과했다. 즉 두 번째 제안의 현재가치는 총 91만달러인 것이다. 만약 여러분이 레이건의 입장이었다면 어떤 제안을 받아들이겠는가.
'불리한 조건' 쓰레기 수거업체, 캘리포니아 해변 보존법 제시
'높은 가격'에도 계약 따내…'숨은 목적' 살펴야 해결책 나와
첫 번째 제안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4만달러씩이나 차이가 나니 당연히 더 큰 금액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이 이익이라는 계산에서다. 하지만 레이건의 선택은 두 번째 제안이었다. 왜일까.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레이건이 집착한 것은 ‘백만장자’였기 때문이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그러니까 99만달러가 있어도 100만달러가 되지 않으면 그 타이틀을 얻을 수 없다. 결국 100만달러가 아닌 것은 그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계약서에 100만달러가 써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자신이 백만장자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으니까. 레이건의 이야기는 협상을 잘 할 수 있는 결정적인 방법을 가르쳐준다. 바로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명확히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레이건이 바라는 것은 100만달러가 아니라 백만장자가 되는 것이었다. 상대가 원하는 것을 명확히 알 수 있을 때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창의적인 방안을 내놓을 수 있다. 이처럼 드러나지 않지만 상대방을 만족시켜줄 수 있는 요소들이 협상에서는 큰 힘을 발휘하는 경우가 많다.
리처드 셸의 ‘협상의 전략’에는 이와 관련한 흥미로운 사례가 나온다. 미국 애리조나주의 쓰레기 수거업체를 경영하던 캘리 사버는 캘리포니아주 오션사이드 시청의 쓰레기 수거 입찰에 참여했다. 입찰에는 수많은 기업이 참여했다. 사버의 회사는 애리조나주에 있어 운반비용 등을 감안하면 도저히 이 입찰에서 이길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사버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입찰을 따냈다. 그것도 경쟁업체들보다도 5달러나 더 비싼 t당 43달러에 계약을 체결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사버는 파도타기가 취미였다. 사버는 오션사이드 해변에서 파도타기를 하다가 중요한 사실을 하나 알게 됐다. 바로 해변이 점차 침식돼 간다는 것이었다. 이 해변은 오션사이드시가 자랑하는 주요 관광 수입원이고, 부동산 가치를 지켜주는 보루였다. 사버는 이 점에 초점을 맞췄다. 그는 오션사이드 시청에 단순히 쓰레기 수거뿐 아니라, 해변을 보존하는 방안을 같이 제안했다. 마침 사버의 회사는 애리조나주에 쓰레기 하치장이 있었다. 그 주변은 온통 사막으로 모래투성이였다. 회사 트럭으로 오션사이드시 밖으로 쓰레기를 치우는 한편 애리조나에 있는 깨끗하고 신선한 모래를 가져와 해변에 쏟아 붓겠다고 제안했다. 오션사이드시 공무원들은 비용을 줄일 수 있는 쓰레기 처리 사업자를 원했지만, 사버의 제안을 듣고 그 가치를 금방 알아차렸다. 그래서 그가 원하는 프리미엄을 지불하면서까지 사버에게 쓰레기 처리를 맡겼다. 레이건의 목장 사례와 오션사이드시 쓰레기 수거 사례 모두 창의적인 방식으로 협상이 해결됐다. 창의적인 해결의 기반은 바로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분명히 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상대방이 말한 것이든, 말하지 않은 것이든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명확히 알 수 있어야 그것을 바탕으로 창의적인 해결책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제 협상을 하게 된다면 먼저 상대방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명확히 하라. 원하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창의적인 해결책의 단초가 나올 테니까.
이계평 < 세계경영연구원(IGM)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