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 정보유출 파문 확산] 국민불안 확산 뻔한데…'뒷북 대응'에 관련부처 손발도 안맞아
입력
수정
지면A5
禍 키운 금융당국금융감독원이 카드사 정보유출 사건을 검찰 발표 전에 인지하고서도 적절한 대응책 마련에 실패해 사태를 키웠다는 비판이 거세다. 국민들의 불안감이 급속하게 확대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관련자 문책을 통해 사건을 수습하려고 해 본질을 잘못 파악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태수습보다 관련자 '문책 카드'만 남발
'2차피해 나면 책임진다'는 당국자도 없어
○인지하고도 늑장 대응한 금감원 금감원은 창원지방검찰청이 카드 3사에서 1억400만건의 정보가 유출됐다고 발표하기 20여일 전인 지난해 12월13일께 저축은행 캐피털사 카드사 등 16개 금융사에서 유출된 300만건의 정보를 검찰로부터 넘겨받았다. 금감원은 이 300만건을 분류하고 처리하는 데만 보름여를 허비했다.
금감원은 이 무렵 몇몇 카드사에서도 상당 규모의 개인정보가 유출됐다는 얘기를 전달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윗선에 보고해 조직적으로 대응책을 마련하기보다는 검찰 수사 결과 발표만을 기다렸다. 최수현 금감원장은 23일 국회 정무위원회의 답변에서 “검찰 발표(1월8일) 이틀 전에 상황을 보고받았다”고 말했다. 금감원의 초기 대응이 늦어지다 보니 금융위원회와의 공조와 검찰과의 협조도 미흡할 수밖에 없었다는 지적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현장(금융당국과 검찰)에서 제대로 된 보고와 상황 판단이 내려지지 않다 보니 정부 차원의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상황에 끌려 다니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창원지검이 개인정보 유출 수사 결과를 발표한 8일만 해도 금융당국은 정보유출에 따른 ‘후폭풍’이 어떻게 불어닥칠지 예상하지 못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검찰로부터 관련 자료를 몽땅 넘겨받은 게 지난 10일이었기 때문에 수사 발표 후 며칠간은 정확한 사태 파악이 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수습’과 ‘문책’ 우선 순위도 혼선
금융당국은 일관된 메시지를 국민들에게 전하는데도 실패했다. ‘사태 수습’이 먼저인지, ‘책임자 문책’이 먼저인지도 명확하지 않았다.
카드사가 인터넷을 통해 고객들이 정보 유출 내역을 확인하도록 한 17일 이후엔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그런데도 최 원장은 지난 19일 기자실에 들러 “검사와 제재가 끝나기 전이라도 그룹 최고경영자가 관련자들을 인사 조치할 것을 기대한다”고 압박했다. 신제윤 금융위원장도 다음날 최고 한도의 제재를 재차 강조했다. 국민들의 2차 피해에 대한 불안과 공포가 카드 3사 및 코리아크레딧뷰로(KCB) 경영진 사퇴로 누그러질 것으로 판단했던 셈이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사장들을 수차례 불러 사태 수습에 최선을 다하라고 하면서도 뒤로는 책임을 지라고 하니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몰랐던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책임지는 당국자 없었다 국민 불안을 진정시키기 위한 책임 있는 메시지 전달도 미흡했다. 금융당국은 ‘USB(이동식 저장장치)에 담긴 고객정보가 유통되기 전에 모두 압수됐다’는 검찰 수사 발표 내용을 인용하며 ‘2차 피해 가능성은 희박하다’고만 강조했다. ‘2차 피해가 발생하면 책임지겠다’고 나서는 당국자는 한 사람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정부의 발표를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는 국민들의 불안감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금융위는 당초 정보가 유출된 카드의 전면 재발급도 검토했다. 약 1000만명에게 카드를 재발급하는 데 드는 500억원의 비용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오히려 ‘정부가 스스로 문제가 있다는 걸 인정하는 꼴이 된다’는 논리에 막히고 말았다.
한 경제부처 관계자는 “이 정도의 상황이 빚어지면 정부가 국민들의 궁금증을 정리해 알려주는 게 보통”이라며 “이번에는 이 같은 기본적인 대응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대통령 질책에 대책 급조
우왕좌왕하던 정부 내 분위기는 박근혜 대통령이 스위스 현지에서 “철저하게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문책하라”고 말한 뒤 확 달라졌다.
정홍원 국무총리가 21일 관계장관 회의를 소집해 금융감독 당국을 질타하며 종합대책을 마련할 것을 지시했고, 관련 부처는 22일에 대책을 발표했다. 검찰 수사가 발표된 지 14일 만이었다. 당초 금융당국은 재발방지 대책을 설 전후에 발표할 예정이었다. 대통령 지시로 급조한 대책이다 보니 과징금 규모 등 구체화되지 않은 내용이 다수 포함됐다.
류시훈 기자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