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보물창고 울돌목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
그리스신화에서 이아손의 아르고 원정대가 황금 양털모피를 찾아 콜키스로 항해할 때 가장 위험했던 장면은 ‘충돌하는 바위(심플레가데스)’를 지날 때였다. 두 바위가 붙었다 떨어졌다 하며 배를 난파시켰기 때문이다. 이 신화를 추적한 영국 BBC는 심플레가데스를 흑해의 관문으로 추정했다. 바위투성이에 물살도 거세 무수한 배들이 침몰했다고 한다.

오디세우스가 세이렌들의 유혹을 받은 시칠리아섬 부근 해역도 파도가 사납기로 유명하다. 세이렌이나 심플레가데스는 사나운 해류와 격랑에 대한 신화적 은유인 셈이다. 독일 민요의 로렐라이 언덕도 라인강의 급류지대를 가리킨다. 강력한 지진과 홍수로 하룻새 가라앉았다는 전설속 문명국 아틀란티스도 있다. 플라톤이 ‘대화편’에 그 위치를 ‘헤라클레스의 기둥’(지브롤터 해협) 서쪽이라고 기록해 대서양의 섬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요즘엔 지중해 크레타섬(미노아 문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실제로 지중해 바닷속에서 고대 문명도시가 속속 발견된다. 5000년 전 번성했던 그리스 남쪽 해안의 파블로페트리는 수세식 화장실과 배수시설을 갖춘 2층 건물도 있어 ‘수몰된 폼페이’로 불린다. 이집트 북부 해저에선 1200년 전 지진으로 침몰한 헤라클레이온의 유적이 나왔다. 헤로도투스의 기록과 전설로만 전해지던 것이 실제였던 것이다.

해저유물 하면 침몰한 해적선도 빼놓을 수 없다. 18세기 초 영국출신 해적 블랙비어드(검은 털보)의 배가 1996년 인양됐는데 금붙이가 납탄에 섞여 나왔다. 블랙비어드는 만화영화 ‘피터팬’의 후크선장, 영화 ‘캐러비언의 해적’의 모델이다. 17세기 해적 헨리 모건의 배도 2011년 처음 수중 위치가 발견됐다. 우리나라에선 1976년 신안 앞바다에서 침몰한 중국 송·원시대 무역선이 인양된 이래 해저유물 찾기가 본격화됐다. 완도, 태안에서도 진귀한 고려청자, 주화 등이 나왔다. 또한 보물선 이야기만도 울릉도 근해의 러시아 돈스코이호, 옹진의 청나라 고승호, 진도의 하야시 보물선 등 10여건에 이른다.

국립 해양문화재연구소가 엊그제 진도 울돌목 부근 해저에서 건져올린 삼국시대 초기 토기, 고려청자 등 유물 500여점을 공개했다. 파도가 바위에 부딪혀 우는 소리가 난다는 울돌목(鳴梁)은 이순신 장군이 13척으로 왜군 133척을 물리친 명량해전 승전지다. 올 여름엔 영화 ‘명량-회오리바다’가 개봉한다니 이래저래 관심을 모은다. 지구의 8할을 차지하는 바다에는 과연 무엇이 잠겨 있을까.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