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인터뷰] "왜 40년째 한옥서 사느냐고요?…한국만의 멋과 정취에 빠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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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눈의 '한옥지킴이' 피터 바돌로뮤 씨설을 앞둔 주말인 지난 25일 오전. 서울 지하철 4호선 성신여대입구역 4번 출구에서 나와 추적추적 내리는 빗길을 뚫고 약 5~7분쯤 걸었을까. 성북구 동소문로17길 주택가에 있는 피터 바돌로뮤 씨(65)의 집 나무 대문(바깥대문)이 나타났다. 육중한 문을 밀고 들어서자 기와들이 양쪽에 가지런히 줄 선 좁은 골목과 계단이 다시 안대문으로 이어졌다. 삐거덕 안대문을 열자 대나무와 은행나무, 살구나무가 심어진 작은 마당이 나온다. 집주인이 돌과 흙을 직접 쌓아 꾸몄다지만 비 내리는 겨울의 정원은 다소 황량하고 을씨년스러웠다.
한옥은 한민족의 철학과 예술 담아…철거 아쉬워
세월 지났다고 집값 아예 사라지는 나라는 한국뿐
낡은 집도 역사·문화성·수리 여부 따져 가치 매겨야
집 안으로 들어선 순간, 분위기는 180도 달라졌다. 마치 놀이공원이나 박물관에 온 것처럼 눈이 휘둥그레지는 공간이 펼쳐졌다. 1974년 이 집을 구입해 꼭 40년째 살고 있다는 바돌로뮤 씨는 무려 한 시간 넘게 기자를 구석구석으로 안내하며 집 구조와 가구에 대해 설명했다. 간간이 섞여 나오는 팔도 사투리와 한국인보다 해박한 한옥 및 역사에 대한 지식을 접하니 ‘한옥 투어’에 온 듯싶었다. 바돌로뮤 씨는 연신 “예쁘지 않아요? 난 정말 좋아요”라거나 “만지면 안돼요. 조심조심”이라고 조용히 외쳤다. 그는 ‘한옥’을 진심으로, 온 정성을 다해 사랑하고 있었다. 인터뷰는 3시간 넘게 진행됐다. ▷한국인들도 불편하다는 오래된 한옥에서 사는 건 어떠십니까.
“다들 춥고 손 많이 가는데 왜 사느냐고 의아해합니다.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원래 단독주택이 아파트보단 손이 더 가는 거예요. 한옥은 옛날 사람들이 머리를 정말 잘 쓴 집인데 다들 머리로만 알지 진짜로 몰라요. 한 예로 한옥을 개조한다고 부엌 바닥을 높이는데 잘못된 겁니다. 부엌을 안방 등 본채보다 낮게 설계해야 요리에 쓰는 아궁이 불이 안방 바닥 난방으로 이용되죠. 에너지 절감이에요. 물론 저는 나무땔감과 도시가스를 모두 난방에 사용하도록 약간 개조했습니다. 다락방과 벽장, 지붕 서까래의 각도, 햇살이 비치면 드러나는 창살 무늬, 미닫이문과 벽에 걸려 있는 시화와 탱화(불교그림) … . 한옥은 건축과 미술, 공예, 철학이 합쳐진 겁니다.”
▷한옥에 그렇게 심오한 의미가 있습니까. “집 대청마루 위에 붓글씨로 당호(堂號)를 걸잖아요. 제가 아흔아홉 칸 고택으로 유명한 강릉의 ‘船橋莊(선교장)’에서 살았거든요. 집 앞에 큰 호수가 있는데 시내에 가려면 멀리 돌아가거나 배를 타고 건너야 해요. 배를 대는 다리라는 뜻에서 ‘선교’란 이름을 붙인 거죠. 선조들은 집을 지을 때 주변의 환경과 의미를 생각하면서 각 건물에 이름을 붙였죠. 이게 한옥의 철학이에요.”
바돌로뮤 씨 집에는 ‘자줏빛 구름이 있는 집’이란 의미의 ‘紫雲堂(자운당)’이란 글씨가 걸려 있었다. 조선시대 말기 최고의 감식안을 가진 인물로 꼽히는 위창(葦滄) 오세창(1864~1953) 선생이 쓴 것으로 추정되는 것이다. 우연히 발견해 싼 가격에 구입했단다.
▷한국인보다 더 한옥을 사랑하고 있군요. “사랑하는 게 아니라 인정하는 겁니다. 서양 문화에서는 조상이 만든 오래된 집을 귀하게 여기고 보존하는 것이 당연하거든요. 미국이나 유럽에서 가장 비싼 단독주택은 오래됐지만 잘 지어졌고 수리와 관리가 잘 된 집입니다. 대부분 목조건물인데 새 건물보다 문화적 가치가 뛰어나고 더 비싸요. 오래된 집을 팔 때 주인들은 은행에서 대출받아 집을 수리한 뒤 팔아요. 더 높은 평가를 받으니까.”
▷2007년부터 일대 재개발사업을 반대하셨는데.
“주변에 한옥이 40채가량 남아 있는데 꼭 다 부수고 개발해야 하는지 이해가 안됩니다. 한국에선 집이 오래되면 땅값만 남고 건물값이 아예 없어요. 전 세계 어디를 가도 이런 관행을 못 봤습니다. 예전에 일본에 이런 사고방식이 남아 있었지만 지금은 없어요. 그런데 한국에선 20년이 지나면 ‘노후 건축물’이라며 감가상각을 해 값이 ‘제로’입니다. 그러니 건물을 지을 때 부실하게 대충 짓는 부작용이 생기는 거죠. 살면서도 돈을 들여 수리하거나 신경을 쓰지 않아요. 밀고 새로 지으면 그만이니까. 47년간 한국에서 살았는데 여전히 되살릴 수 없는 전통문화를 너무 쉽게 버리는 것이 속상합니다.” ▷재개발 반대가 한옥보존에 도움이 됩니까.
“꼭 그렇진 않습니다. 재개발이 추진되지 않더라도 상당수 한옥 주인들은 집을 허물고 원룸을 지으려고 하겠죠. 한국에선 ‘한옥보존지구’로 지정해 기존 한옥의 뼈대만 남기고 새로 짓는 것을 한옥보존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깨끗하고 반짝거리게 만드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건 진짜 보존이 아니죠. 옛 형태와 자재 등을 가급적 유지하면서 집의 수명이 오래가도록 관리해야 합니다. 주인도 즐겁게 살다가 팔 때 건물값을 더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새집 짓는 것보다 한옥을 고쳐 사는 것이 비용은 더 적게 들고 가치는 올라간다는 문화가 필요해요. 요새 한옥 붐인데 한옥주들에게 미래가치를 설명해줘야죠.”
▷한옥보존의 이유를 보다 경제적으로 설명하시네요.
“건물 수명이 냉장고 수명과 같다고 생각해선 안됩니다. 역사와 전통을 가진 좋은 건물은 감정평가액도 더 높아져야죠. 정부도 노후주택 관련 규정을 고치고 한옥수리응급센터 같은 것을 만들면 좋겠습니다. 아름다운 대한민국의 산과 강, 집이 너무 천편일률적으로 못생기게 됐어요. 난 한옥지킴이나 전문가가 아니라 그냥 건축물 연구가예요. 제 친구들은 ‘한옥 또라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요.(웃음)”
▷20대 초반 한국에 와 평생을 살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1960년대 말은 한국에서 전통적인 것들이 그대로 남아 있던 마지막 시기였던 것 같아요. 강릉에 너무나 멋진 한옥들이 많았죠. 1968년 강릉 ‘선교장’에 반해 밖에서 오랜 시간 서성이며 스케치를 했습니다. 당시 주인 할머니가 들어와 차 한잔 하라고 하더군요. 안방에서 가장 따뜻한 아랫목에 앉으라고 청하셔서 세 번 거절했습니다. 밥 먹을 때에도 한국식 예절을 그대로 지켰죠. 자식들을 서울로 보내고 하인들과 외롭게 살던 할머니가 방 한 칸을 내주시게 된 것이 계기죠. 원래 2년만 있으려고 했는데 한옥과 한국 건축에 대해 너무나 연구할 것이 많아서….”
▷곧 한국 최대의 명절 설입니다. 고향이 그립진 않으신지요.
“(고개를 가로저으며) 미국도 1960년대의 미국이 아닙니다. 지금은 너무 정감이 없고 삭막해요. 설에는 ‘선교장’에 가서 제를 지냅니다. 10여년 이상 명절마다 빼놓지 않고 가죠. 전 가급적 오랫동안 제집에서 살고 싶어요. 편안한 휴식이 있는 곳, 여기가 바로 고향입니다.”
피터 바돌로뮤 씨는
미국과 캐나다의 국경인 나이아가라폭포 인근 나이아가라시티에서 캐나다인 아버지와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1968년 초 미국 정부가 파견한 평화봉사단의 일원으로 처음 한국땅을 밟았다.
강릉 주문진에서 한국인 선생들에게 영어와 교습법을 가르치다 초가집과 기와집의 매력에 사로잡혔다. 조선 왕조 후손이자 강릉의 명문가로 알려진 이내번과 그 후손들이 대대로 거주하던 고택인 ‘선교장’(중요민속자료 제5호)에 4년여간 거주하면서 본격적으로 한옥 및 조선시대 건축물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1974년 서울 성북구 동선동 한옥주택을 구입한 후 지금까지 40년째 이곳에 살고 있다. 12년 전 뒷집(한옥)도 사들였다.
1980년대부터 해군의장대와 결연을 맺고 지방 출신의 예비역 대학생 5명에게 무료로 하숙방을 제공하고 있다.현재 시추선과 해양시설을 건축·설계·감독하는 컨설팅업체인 IRC의 부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작년부터 대통령 직속 문화융성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