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막한 도시에 감성과 힐링…공공미술의 진화

'안양프로젝트' '양림 성장형' 등 치유 방식으로 바뀌는 추세
안양예술공원 주차장과 야외공연장을 잇는 ‘나무 위의 선으로 된 집’. 정석범 기자
수도권의 대표적 주거 밀집지인 안양시 예술공원로에 있는 안양파빌리온. 포르투갈의 세계적인 건축가 알바루 시자 비에이라가 설계한 이곳에서는 1주일에 두 차례씩 지역민을 대상으로 한 ‘만들자 연구실’이 열린다. ‘안양 공공미술 프로젝트’의 하나인 이 프로그램은 공예, 3D(3차원)프린팅 등 다양한 기술을 활용해 자신이 생각한 공작품을 직접 제작해보는 일종의 체험 공방이다.

이런 공공미술이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공공미술은 공공기관이 주체가 돼 도시와 지방자치단체의 주거 공간에 예술의 향기를 불어넣는 프로그램. 여유 있고 품격 높은 삶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시도다. 서구에서는 오랜 역사를 갖고 있지만 국내에서 공공미술이 본격적으로 도입된 것은 2006년부터다. 노무현 정부가 소외 지역의 생활환경 개선을 위해 ‘아트 인 시티’ 사업에 12억2500만원을 투입한 것이 시초다. 2007년에는 서울시가 4년간 108억원을 들여 ‘도시갤러리 프로젝트’를 전개했다. 근대 문화재의 가치를 일깨우는 ‘정동길 프로젝트’ 등 모두 88개의 사업이 지원을 받았다.

그러나 두 프로젝트는 주민참여 방식으로 생활문화 환경을 개선한다는 당초의 취지와 달리 성과를 의식한 장식적 공공미술에 머물렀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물만골 프로젝트’(2006)는 지역민의 정서를 외면한 채 생태공동체를 조성하려던 기획팀의 의도가 주민과 마찰을 빚어 일부 작품이 무단 철거되기도 했다.

지난해 12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공미술 2.0’ 프로젝트의 지원으로 출범한 안양문화예술재단의 ‘진화하는 공공미술-지식의 공유와 경험의 확장’은 주민의 참여폭을 넓히고 눈높이를 배려한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단순한 보여주기에 그치지 않고 삶의 일부로 녹여내는 교육 기능을 강화한 것이 특징이다. 야외 조형물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안목을 키워주기 위해 공공미술 스토리텔러 양성프로그램, 공공미술 북클럽 등도 도입했다. 광주문화재단의 ‘양림 성장형 공공미술 프로젝트’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지역민이 주체가 돼 지역의 문화적 자원을 활용하는 시민주도형 프로젝트다. 이장우 고택 등 전통 건축과 양림교회 등 근대 기독교건축물이 공존할 뿐만 아니라 근현대 문화예술인들을 다수 배출한 이 지역의 유서 깊은 역사를 자양분 삼아 시민과 예술가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 결과물을 만들어낸다는 계획이다.

심혜화 안양문화예술재단 팀장은 “그간의 공공미술은 지역의 문화적 맥락과 동떨어진 조형물 중심이어서 공감을 얻기 어려웠다”며 “정서적 만족감을 유도하는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공공성을 획득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