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돈 좀 아는 세 남자, 세계 경제를 들었다 놨다

연금술사들
닐 어윈 지음 / 조영무·김건우 감수 / 김선영 옮김 / 비즈니스맵 / 616쪽 / 2만5000원
책은 2007년 8월9일 세 사람의 하루에서 시작한다. 장클로드 트리셰는 이날 어린 시절 살던 브르타뉴 해안에서 여유로운 휴가를 보낼 예정이었다. 머빈 킹 역시 영국과 인도 국가대표팀이 맞붙는 크리켓 경기를 즐길 생각이었고, 벤 버냉키는 평소처럼 홀로 업무 계획을 검토하고 있었다. 알다시피 세 사람은 각각 유럽중앙은행 총재, 잉글랜드은행 총재, 미 중앙은행(Fed) 의장. 향후 격변의 세계를 좌우할 인물들이었다. 그러나 이날 하루는, 아니 그 후의 역사는 그들의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른 아침 트리셰가 받은 한 통의 전화는 그 시작이었다.

《연금술사들》은 뉴욕타임스의 경제전문 기자인 저자가 버냉키와 트리셰, 킹의 시점에서 금융위기를 재구성한 책이다. ‘중앙은행을 중심으로 본 금융위기의 전말’인 셈. 또는 반대로 ‘금융위기를 통해 본 중앙은행의 역할론’이기도 하다. 저자는 세 사람이 맞닥뜨린 금융위기의 자세한 상황과 논란들, 그 앞에서의 고민과 정책적 선택, 정치인과 금융계 인사 등 수많은 행위자와의 상호작용을 흥미롭게 펼쳐 보인다.

딱딱한 주제에도 불구하고 마치 TV 드라마처럼 흘러간다. 성격을 입힌 인물들은 바로 옆에서 보듯 생동감 있고, 이들이 처한 상황은 디테일하다. 다소 어렵고 전문적인 부분에는 저자의 친절한 부연 설명이 붙는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세계 경제가 어떻게 구성돼 있는지, 중앙은행의 통화정책과 국제 금융이 돌아가는 과정이 어떤지 엿볼 수 있다.

벤 버냉키
저자는 버냉키를 겸손하고 합리적이며 탁월한 능력을 가진 인물로 묘사한다. 세계를 좌우할 수 있는 권력을 가졌음에도 그는 사교모임에 가기보다는 책을 읽으며 아내와 조용한 저녁을 보내는 걸 좋아했다. 그는 (전임 앨런 그린스펀과는 달리) 반대 의견에 귀를 기울였고 이를 건강한 조직의 증거로 여겼다. 정치인은 아니지만 이런 자신의 장점으로 의회를 설득할 줄 알았다. 게다가 그는 대공황을 연구한 통화주의 경제학자로, 파국적 금융위기를 맞이한 미국을 위한 적임자였다.

“Fed가 위기의 순간에 준비된 의장을 맞이한 것은 순전히 운이었다. 버냉키는 중앙은행이 위기 때 안일하게 대처하면 경제에 어떤 일이 생길지 그 누구보다도 꿰뚫고 있었고, 대중에게 엄청난 고통을 초래한 1920년대와 1930년대에 중앙은행이 저지른 실수를 되풀이할까봐 노심초사했다.”

트리셰는 강인한 체력을 바탕으로 신중하면서도 단호한 결정을 내리는 인물로, 킹은 독단적이고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는 인물로 그린다. 킹은 금융위기 초기의 신용 위축을 “더욱 현실적인 위험평가가 이뤄진다는 점에서 환영할 일”이라고 판단하기도 했다. “킹이 군림하는 잉글랜드은행에서는 엄밀한 증거만 인정받을 수 있었다. 은행 직원들 사이에서는 머빈이 가장 중시하는 일을 해야 승진을 보장받는다는 게 상식으로 통했다. 그는 자신의 견해와 경제분석에 매우 자신만만했고 자신과 견해가 다르면 그 누구든 상대방을 무시했다.”

저자는 이 시기 미 의회가 Fed를 규제하려 했던 상황을 자세히 다루며 중앙은행의 민주적 정당성에 대한 논쟁에 주목한다. 의회는 “이 돈은 Fed의 것이 아니라 미국인의 돈이고, 미국인은 그 돈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알 권리가 있다”며 Fed의 ‘투명화’를 주장했다. 그러나 숱한 논쟁 끝에 결국 Fed는 막강한 권한을 유지했다. 시간이 갈수록 입법자들 스스로가 Fed는 전문지식이 필요한 기관이고, 실제로 그 지식을 갖춘 곳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중앙은행의 역사를 서술하며 “버냉키와 킹, 트리셰는 전임 중앙은행장의 실패로부터 교훈을 얻었다. 이들의 후계자들도 이들의 실수로부터 배울 것이다. (점진적 발전은 요구할 수 있지만) 민주주의 사회는 중앙은행장들을 믿어야 한다. 매우 중요하나 전문적이고 복잡한 사안들을 표결로 처리할 수는 없다”고 결론 내린다. 하지만 책장을 덮을 무렵엔 중앙은행을 들여다본 이 책 자체가 중앙은행의 투명성을 한층 높였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경제·금융서라기보다는 사회와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읽어야 할 책이다.

박한신 기자 han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