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다국적 새댁들의 TO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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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반만년 단일민족, 배달겨레’ 늘 들어오던 일상의 구호다. 감성적, 고답적, 상투적 외침이다. 폐쇄적 관념이거나 은둔적 자기만족이었을지도 모른다. 다민족의 용광로 미국 중국을 보면서도 그랬다. 요즘은 덜 들리는 걸 보면 우리사회도 꽤 변한 것이 사실이다. 세계의 한국이 된 건가, 개방형 강중국으로 변한 건가, 코스모폴리탄 세대들이 급성장한 것일까.
작년에 해외나들이를 간 한국인은 1480만명에 달했다. 해외 유학생도 어느새 30만명 시대다. 국내로 들어온 외국 유학생도 10만에 육박한다. 비즈니스맨들의 이동은 더 많다. 그래도 순수단일민족론을 확실하게 깨부순 것은 결혼이민자들의 이주 물결이었다. 어느새 15만명이다. 2010년 1만9527건을 정점으로 상승세는 꺾였지만 지난해에도 1만4137건의 결혼이민 비자(F-6)가 발급됐다. 국가별로도 다양하다. 베트남 새댁이 약 4만, 중국이 3만5000여명이다. 한국계 중국인, 즉 조선족 2만8000명은 별도다. 몽골·미국·태국·우즈베키스탄댁도 2000명씩 이상이다. 일본댁도 1만1700여명이라니 대단한 다문화 추세다. 모두가 단란한 가정을 이루지는 못했다. 환경이 열악하고 경제적으로 궁하면 싸우지 않을 부부도 없다. 단지 다문화가구여서 가슴이 더 시리다. 극단적인 상황들도 사회면을 장식한다. 국제사기결혼이라며 외교문제로도 비화된다.
부부가 ‘말이 통하지 않는’ 게 큰 문제였다. 소통 문제도 이쯤 되면 원초적이다. 다문화 가정의 잦은 불행이 언어장벽과 경제문제라고 정부도 봤다. 한국어능력시험(TOPIK)에서 초급점수는 얻어야 하고 받아들이는 쪽은 최저생계비의 120%만큼 소득이 있어야 한다는 결혼비자 발급기준 강화책도 그래서 나왔다. 나라마다 그 숱한 공인 외국어시험이 한국으로의 이민 희망자에게 적용된다니…. 영어의 토익(TOEIC)·토플(TOEFL), 중국판 토익(C.TEST, HSK), 공인일본어(JLPT), 프랑스어(DELF, DALF)처럼 국제언어 한국어 시험시장이 동남아에서 생길 판이다.
소통과 경제력. 다문화가구만이랴. 법무부가 결혼유지의 핵심은 짚은 것 같다. 하지만 그게 정부가 바로 개입할 성질인지는 의문표다. 다문화국가 프랑스처럼 국제신부를 받아들여 차분히 우리말을 가르치면 어떤가. 출산장려 예산의 1%만 돼도 족하다. 3인 가족 연 1913만원은 벌어야 외국신부를 모셔올 수 있게 한 기준도 논란이다. 최소 조건이라지만 기준치고는 고약하다. 국경을 넘는 사랑이 국어실력과 최소 소득기준에 막히는 느낌이다.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