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부처 '입' 역할…누구를 앉히나 '고심'

장관들 잇단 말실수…靑 "대변인은 고참 임명하라"

해수부, 과장급 내정 靑에 올렸지만 '퇴짜'…인사 원점서 다시 작업
초임 국장이 맡아왔는데…"적임자 찾기 어렵다"
해양수산부는 지난달 행정고시 37회 출신인 오윤열 운영지원과장(현 여수유류오염사고 수습대책단장)을 대변인으로 내정, 청와대에 보고했지만 ‘퇴짜’를 맞았다. 청와대는 ‘정부 부처 대변인에 초임 국장보다는 고참급 국장을 임명해야 한다’는 방침을 해수부 측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수부는 결국 이미 짜여 있던 국·과장 인사를 원점에서 다시 검토한 끝에 강준석 수산정책실장(1급)과 동기이자 고참급 국장인 박승기 인천해양항만청장(기술고시 22기·행시 30기 해당)을 대변인 후보자로 청와대에 다시 보고했다. ◆골머리 앓는 정부 부처

청와대가 최근 인사 시즌을 앞두고 정부 부처의 핵심 보직인 대변인을 고참급 국장으로 임명하라고 지침을 내리면서 각 부처가 인사판을 새로 짜느라 골머리를 앓고 있다. ‘고참 국장’이란 1급 승진을 앞둔 고위 공무원으로 국장들 중 기수가 높은 편에 속하는 관료를 말한다. 대변인은 초임 국장이나 중간급 국장이 맡는 게 보통이다.

해수부와 마찬가지로 보건복지부도 지난달 행정고시 36회 출신인 류근혁 연금정책과장을 대변인 후보로 청와대에 올렸지만 기수가 낮다는 이유로 반려당했다. 대변인 인사가 틀어진 복지부는 요즘 국·과장 인사를 재검토하고 있지만 아직 적임자를 찾지 못했다. 행정고시 36~37회 출신 국·과장을 대상으로 대변인을 찾으려던 고용노동부도 고참급 대변인 후보자 선정에 고심하고 있다. 고참급 국장에 해당하는 관료들이 청년 고용이나 고용률 70% 달성 로드맵 등 현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를 맡고 있어 이들을 차출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청와대가 고참급 대변인을 원하는 이유는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나 윤진숙 전 해수부 장관 등 고위 공무원의 잇단 말실수 논란과 무관하지 않다. 노련한 대변인을 임명해 우발적인 상황에 미리 대비하고 부처 전체 시각으로 상황 판단과 분석을 하겠다는 것이다. 또 부처 장악력이 상대적으로 높은 고참 대변인을 통해 정책 홍보를 강화하겠다는 의도도 있다.

정부 관계자는 “정책 이해도가 높고 다양한 경험이 많아 정책 홍보 활동을 노련하게 할 수 있는 국장을 선정하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만기친람’식 인사 불만도

문제는 각 부처가 적임자를 찾지 못하면서 ‘부처의 입’ 역할을 하는 대변인 공석 사태가 장기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해수부는 박광열 현 대변인이 17일 국립외교원에 교육 파견을 나갈 예정이다. 윤 장관 해임으로 손재학 차관 대행체제로 운영되고 있는 해수부는 다음주까지 인사가 나지 않으면 장관에 이어 핵심 보직인 대변인 자리도 공석이 된다. 고용부의 경우 박성희 전 대변인이 지난 3일 국방대학원에 교육 파견을 나가면서 대변인 공석 상황이 1주일째 이어지고 있다.

일부에서는 청와대가 부처 대변인까지 챙기는 만기친람(萬機親覽·임금이 온갖 정사를 돌보는 상황)식 인사에 대한 불만도 나오고 있다. 청와대가 부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고시 기수를 잣대로 획일적인 인사를 한다면 그만큼 적임자를 찾기 힘들다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오윤열 해수부 운영지원과장은 부처 내 주요 보직을 두루 거쳤고 기자와의 관계도 원만해 대변인으로 적임자라는 평이었다”며 “기수로 대변인을 선정한다면 규모가 작은 부처들은 제대로 된 적임자를 선정하기가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세종=김우섭/김용준/강경민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