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보조금 대란 언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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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리 IT과학부 기자 sljun@hankyung.com지난 11일 새벽 서울 동대문에 있는 휴대폰 대리점 앞. 수백 명이 캄캄한 거리에서 칼바람을 맞으며 줄을 섰다. 진풍경의 발단은 전날 밤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 새벽까지 매장으로 직접 찾아온 사람들에게만 ‘공짜폰’ ‘마이너스폰’을 판다는 내용이었다. ‘2·11 대란’ ‘올빼미 보조금 대란’은 이렇게 시작됐다.
이후 치열한 전쟁이 벌어졌다. 하루 번호이동(통신사를 바꿔 가입하는 것) 건수는 11만여건에 달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시장과열 지표로 삼는 기준인 2만4000건의 4.6배 규모다. 출고가 84만7000원의 갤럭시S4 LTE-A에 최대 145만원의 보조금이 붙었다. 가입만 하면 60만원을 현금으로 주거나 요금 할인으로 돌려주는 방식이다. 올 들어 보조금 전쟁은 더 극심해졌다. 통신 3사의 점유율이 마지노선(지난해 말 기준 SK텔레콤 50.02%, KT 30.09%, LG유플러스 19.88%)에 놓이자 자존심 싸움으로까지 번졌다. 험악해진 여론전은 이를 보여준다. “점유율 50%에 목숨 건 SK텔레콤이 도발했다.” “KT가 황창규 신임 회장 취임 후 30% 수성에 나섰다.” “LG유플러스가 올해 가입자를 5% 늘린다는 목표를 세운 건 무한 보조금을 풀겠단 얘기다.”
보조금 전쟁이 계속되자 방통위가 나섰다. 14일 전체회의를 열고 통신사를 제재할 예정이다. 하지만 벌써부터 제재가 소용없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지난해 통신 3사에 총 1786억7000만원에 이르는 과징금을 부과했지만 효과는 ‘반짝’하는 데 그쳤기 때문이다.
보조금 대란과 실효성 없는 제재가 되풀이되자 27만원 이상의 보조금을 불법으로 규정하는 규제를 없애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는 지적이 오래전부터 제기됐다. 그럼에도 규제가 없어지지 않고 있는 건 방통위와 통신사 모두 규제를 바라기 때문이다. 방통위는 규제로 권력을 갖는다. 통신사들은 규제 없는 무한 경쟁을 두려워한다. 통신사가 방통위의 규제 보호막 뒤에서 교묘한 줄타기를 하는 사이 피해를 보는 건 소비자다. 급기야 휴대폰을 사기 위해 꼭두새벽부터 줄을 서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휴대폰 보조금 규제가 과연 누굴 위한 것인지 다시 따져볼 때다.
전설리 IT과학부 기자 sl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