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팝아티스트가 포착한 서울 사람들 패션과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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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언 오피 3월 23일까지 국제갤러리서 개인전도시민들은 하루 종일 끊임없이 움직인다. 출퇴근하는 사람, 쇼핑하는 사람, 관광객 할 것 없이 저마다 자신만의 발걸음을 재촉한다. 그런 도시민의 끊임없는 움직임 속에서 예기치 않은 아름다움을 발견한 이가 있다.
서울역사 앞 서울스퀘어(옛 대우빌딩)의 초대형 LED(발광다이오드) 전광판 ‘걸어가는 사람들’로 잘 알려진 영국 작가 줄리언 오피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도시인의 역동적인 움직임을 디자인적 캐릭터로 묘사한 그가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3월23일까지 개인전을 연다. 2009년에 이어 5년 만에 갖는 한국 전시다. 영국 골드스미스컬리지를 졸업한 오피는 도시생활 속에서 만나는 평범한 오브제들을 회화와 조각으로 재해석해 세계적인 명성을 쌓았다. 자신이 직접 촬영한 사진을 바탕으로 구현한 디지털 드로잉은 단순하면서도 감성적인 힘을 뿜어내 보는 이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다. 그는 대량생산과 대량 소통을 위해 고안된 사진과 컴퓨터 디자인 기술을 교묘하게 차용하고 응용함으로써 예술의 본질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이번 전시에는 최근에 제작한 세 가지 연작이 선보인다. 서울의 보행자들을 다룬 회화연작은 얼굴을 둥그렇게 획일적으로 그린 전작들과 다르게 구체적인 특징을 잡아내 눈길을 끈다. ‘사당동의 빗속을 거니는 사람들’을 보면 가방과 구두까지 세세하게 묘사했다. “세심한 부분까지 신경 쓰는 서울 사람들의 패션 감각에 놀랐다”는 작가는 이 작품을 제작하기 위해 서울의 사진가에 의뢰해 수천 장의 거리 풍경을 촬영하게 하고 그 이미지 속에서 인상적인 인물 10여명을 가려내 애니메이션 캐릭터처럼 단순화해 배치했다.
서울지역 보행자의 밝은 분위기와는 다르게 런던의 보행자를 담은 LED애니메이션 회화 연작은 흑백의 컬러만 사용해 우수 어린 시적 정서를 풍겨 대조를 보인다. 작가가 자기 자녀의 친구를 모델로 해서 제작한 두 개의 대형 레진(페놀수지) 모형도 선보인다. 신석기 시대의 토템을 연상시키는 이 두상은 고대 로마의 거대한 두상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한 것이다. 집단의 역사적 경험이 오늘의 개인과 어떤 방식으로 교감하는지 잘 보여준다. 작가는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목적에 몰입해 있고 자신만의 옷차림을 하고 있지만 낯선 사람들과 뒤섞여 끊임없이 변화하는 무작위적인 춤을 춘다”고 힘줘 말하며 차가운 도시군중의 움직임 속에서 우리가 잊고 있던 따스한 감성을 발견할 것을 권유한다. (02)735-8449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