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판 신드롬] 명품만 한정판 만든다고? 볼펜·콜라·게임까지 "줄을 서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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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미 153 볼펜 50주년 한정판, 2만원짜리 1만개 하루 만에 매진
디아블로3 확장팩 3월 출시, '밤샘 줄서기' 열풍 재연 움직임
대량 생산 '무늬만' 한정판 부작용…디자인·용량 살짝 바꾼 '꼼수'도

그런데도 온라인상에서는 이를 놓고 토론이 한창이다. 게이머들은 한정판에 어떤 아이템이 담겨 있을지, 어떤 기능이 새로 추가됐을지 등을 점치면서 글을 올리고 있다. 앞서 2012년 5월 ‘디아블로 3 소장판’이 나왔을 때는 서울 왕십리 행사장에 5000여명의 인파가 몰렸다. 준비된 수량은 2000여개에 불과했다. 게이머들은 한정판 CD를 손에 넣기 위해 비를 맞고 밤새 줄을 섰다. 제품을 구하지 못한 3000여명은 쓸쓸히 발길을 돌려야 했다.

‘작은 사치 욕구’의 힘
당시 블리자드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캐릭터에 ‘천사의 날개’를 달았어요. 밤새 줄서서 기다린 보람이 있네요” “천사의 날개를 꼭 갖고 싶었는데 아쉽네요”라는 내용의 글들이 수없이 올라왔다. 박경화 블리자드엔터테인먼트 홍보팀장은 2년 만에 새로운 한정판을 내놓은 배경에 대해 “작지만 특별함을 찾는 게이머들이 적지 않다”며 “한정판을 통해 고객들의 이 같은 바람을 채워주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큰 차이’가 아니다. 물건 자체의 특별한 의미를 다른 사람들이 인지해주면 그것으로 족하다. 모나미 153 볼펜 한정판이 인기를 얻은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모나미 153 리미티드 1.0 블랙’은 기존 제품과 디자인이 똑같다. 달라진 것은 만년필 등에 주로 쓰이는 황동 소재를 몸통에 사용한 것이 전부다. 그 같은 차이만으로도 ‘한정판을 더 만들어달라’는 서명 운동이 벌어질 정도로 큰 관심을 이끌어냈다.
‘도시심리학’의 저자인 하지현 건국대병원 신경정신과 교수는 “고대 사람들이 자아를 나타내는 방법으로 수량이 한정된 예술품을 샀던 것과 비슷한 현상”이라며 “저가의 공산품 한정판만으로도 개성을 드러낼 수 있게 되면서 이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업들은 그동안 차별화 욕구를 한정판 마케팅에 적극 활용해 왔다. 스웨덴의 제조·직매형 의류(SPA) 브랜드 H&M은 매년 이자벨마랑, 마르니 등 명품 회사의 디자이너들이 디자인한 옷을 한정판으로 선보이고 있다. ‘SPA=싸구려’란 편견을 깨기 위해서다. 이는 상당한 효과를 거두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정판에 대한 소비 욕구가 과열되면서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고액에 판매되기도 하고 이를 이용한 사기도 극성을 부리고 있다. 모나미 한정판 제품의 경우 2만원짜리가 최고 34만원까지 거래되기도 했다. 디아블로 3도 평균 3~4배의 가격으로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판매됐다. 또 한정판을 팔겠다며 돈만 받고 잠적하는 이들도 있다.
김희경/임현우/심성미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