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별 볼일 많았던 선조들의 별 기록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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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혜성 이야기‘혜성아 혜성아/너는 어찌해 순임금 시절에 나타나지 않고 성명하신 우리 주상의 시대에 나타났느냐?/주상께서 등극하신 지 일고여덟 해/순임금의 마음을 지니셨으되/다만 정사가 시행되지 못함이 근심이로다.’
안상현 지음 / 사이언스북스 / 320쪽 / 1만8000원
조선 후기 실학자 서계 박세당(1629~1703)이 1682년 나타난 혜성을 보고 지은 한시 ‘혜성행’의 첫머리다. 당시 재난과 천변의 징조로 인식했던 혜성의 출현에 나라와 임금을 걱정하는 충정이 담겨 있다. 영국 천문학자 에드먼드 핼리(1656~1742)는 같은 혜성을 관찰하고 지속적으로 연구해 이 혜성이 타원 궤도를 따라 움직이고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알아냈다. 이 혜성은 역사상 최초로 알려진 주기 혜성으로 발견자의 이름을 따 ‘핼리 혜성’이라고 불린다. 우리 선조들도 이 혜성을 문학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과학적으로 연구한 기록이 있을까.
《우리 혜성 이야기》는 옛 문헌 속에 잠자고 있던 혜성에 얽힌 이야기들을 찾아내 2000년 전부터 오늘까지의 하늘을 펼쳐 보인다. 박사과정 때 쓴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별자리》(현암사)란 책에서 360여개의 고유한 별자리 이야기를 들려준 저자는 2001년 사자자리 별똥소나기(유성우)의 모습에 매료된 이후 옛 문헌에 적힌 별똥소나기 기록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역사천문학에 관심을 갖게 됐다. 저자는 ‘삼국사기’ ‘삼국유사’ ‘고려사’ ‘승정원일기’ ‘조선왕조실록’ 등에 실린 혜성 관측 기록을 통해 다양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낸다. 조선시대에는 관상감 천문학자들이 날마다 하늘을 관측해 임금에게 결과를 보고했다. 이 중 천문 현상에 관한 것이 ‘성변측후단자’였고, 일정 기간 계속된 천문 현상은 따로 모아 ‘천변등록’ ‘성변등록’ 등으로 만들었다. 1759년 3월의 ‘성변등록’은 관상감 학자 안국빈과 김태서가 25일 동안 핼리 혜성을 관측한 기록이다. 우리 선조들이 동시대 어떤 나라 못지않게 체계적으로 발달된 천문관측 기술을 가지고 이를 기록으로 남겼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책은 혜성과 관련된 한반도의 천문학 역사뿐 아니라 동시대 서양 천문학의 성과, 혜성에 관한 기본적 지식까지 망라했다. 천문학자나 아마추어 천문인뿐 아니라 별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혜성의 역사와 역사 속의 혜성을 동시에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길잡이가 될 만하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