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발전 가로막는 방송광고 '대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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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통심의위, 국악스타 송소희의 광고 규제·민요 개사 금지…국악계 '발끈'“빨라진다오 빨라진다오 새 폰 사지 않아도~.”
지난해 국악소녀 송소희가 출연해 큰 인기를 끈 KT의 ‘olleh 광대역 LTE-A’ 광고를 내보낸 7개 방송사는 지난해 12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통심의위)로부터 일종의 경고인 ‘권고 조치’를 받았다. “날좀보소 날좀보소 날좀보소”로 시작하는 밀양아리랑과 광고에 쓰인 노래의 멜로디가 비슷하다는 이유에서였다. 방통심의위는 사후 심의를 통해 규정에 어긋난다고 판단할 경우 해당 광고를 내보낸 방송사에 주의·경고·징계 등의 처분을 내리며 권고는 강제성이 없는 가장 낮은 단계의 조치다.방송광고심의에 관한 규정 제22조 제2항에는 ‘방송광고는 동요 또는 민요(국내에 널리 알려진 외국 민요를 포함한다)를 개사하거나 편곡해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돼 있다. KT 관계자는 27일 “권고 조치를 받은 건 맞지만, 광고에 사용된 곡은 국악인 한충은 씨가 직접 작곡한 창작곡이며 기존 민요를 개사한 것이 아니어서 문제될 게 없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방통심의위에 전달했다”고 설명했다.
김보영 방통심의위 방송광고심의팀 차장은 “오래 전(1980년대)에 만든 규정이라 그 배경에 대해 정확하게 알지 못하지만, 아마 민요의 원형을 보존하기 위해서 제정됐을 것”이란 원론적인 답변을 했다. 이후 해당 광고곡이 창작곡이라는 KT의 의견을 방통심의위가 받아들인 것으로 전해졌지만 심의 규정을 둘러싼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민요를 개사하거나 편곡해 방송광고에 쓸 수 없다는 규정에 대한 국악계 인사들의 생각은 어떨까. 한국경제신문이 민요를 보존하고 알리는 데 앞장서온 국악계 인사에게 의견을 물었더니 9명 모두 이 규정에 대해 반대 입장을 나타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보유자로 서울대에서 민요를 가르치는 이춘희 씨는 “국악을 전공하는 학생들을 가르칠 때 기존 민요곡을 개사해 보라고 시키는데 방송광고여서 개사나 편곡을 금지한다는 건 시대 흐름을 거스르는 규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원형을 보존하는 일은 우리 국악인이 충분히 할 수 있기 때문에 방송광고에 민요가 쓰인다고 원형이 훼손된다는 일각의 걱정은 기우”라고 덧붙였다.
제57호 경기민요 이수자이며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수석단원인 강효주 씨는 “아무리 좋은 음악이라도 들을 기회가 많아야 관심이 생기고 좋고 나쁨을 느낀다”고 이야기했다. 의견을 물은 대부분의 국악인은 이런 규정이 있는지조차 몰랐다며 놀라워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29호(서도소리) 이수자이자 국립국악원 상임단원인 김민경 씨는 “이번에 송소희 양이 인기를 끄니 사람들이 민요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되지 않았느냐”며 “지금 우리가 전통이라고 부르는 음악도 사실은 시대를 거쳐오며 변화한 노래이기 때문에 시대에 따라 민요를 얼마든지 바꿔 부를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다만 민요를 우스꽝스럽게 광고에 사용하는 건 지양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이금미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악장은 “다만 민요에 대한 인식이 더 좋지 않게 될 수 있기 때문에 마구잡이로 광고 소재로 삼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김영운 한양대 국악과 교수는 “민요가 광고에 쓰인다면 대중들이 전통음악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인선 기자 ind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