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복지에 위협받는 자유시장 정신

무상급식·예금보호 등 복지만능주의
무책임한 개인 양산하고 경제는 불안
번영은 책임있는 개인들이 만드는 것

민경국 < 강원대 경제학 교수 >
주지하다시피 시장경제의 윤리적 핵심가치는 정부에 의존하지 말고 자신의 삶에 대해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정신이다. 그런데 일자리도 만들어주고, 소득도 늘려주고, 건강 노후 복지도 보살펴주겠다는 명분으로 정부가 온정적 후견인처럼 경제에 개입하는 모습을 보면서 책임윤리가 쇠퇴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주목할 것은 책임정신이 쇠퇴한 근본적 원인이다. 책임윤리의 중요성에 대한 기존 논거가 매우 취약해 적지 않은 사람들이 책임정신의 중요성을 믿지 않게 됐다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정부 간섭을 막아내고 자유 시장을 지키기 위한 새 논리의 확립이 필요한 이유다. 우선 책임정신의 논거로 거론되는 유서 깊은 ‘자유의지론’을 보자. 인간에겐 외부의 그 어떤 것으로부터도 영향받지 않는 자유 의지가 존재하는데, 이게 투자 생산 소비 등 경제행동을 결정하기에 개인은 자신 행동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인간행동은 신경망에 저장된 본능과 후천적 경험, 그리고 이에 비추어 해석된 환경의 신호나 자극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자유의지론’은 틀렸다. 자유주의 거장 하이에크도 뇌 속에는 ‘물리화학적 인과율’에 따른 신경작용을 조종해 최종 행동을 결정짓는 ‘자아’는 없다고 선언했다. 오늘날 젊은 과학자들의 인기를 끌고있는 뇌 과학과 신경경제학도 뇌 영상장치 등 최첨단 장비를 동원해 뇌 속을 샅샅이 조사했지만 자유의지를 발견하지 못했다며 인간행동의 신경결정론을 옹호하고 나섰다.

설사 자유의지가 존재한다고 해도 그건 개인책임의 근거가 될 수 없다. ‘자유의지자(free willer)’는 타인의 비난 칭찬 보상 등 어떤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멋대로 행동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에겐 인센티브로서의 시장도 의미가 없다. 인간은 환경의 영향을 받아 행동 인격을 바꾸게 마련이다. 그렇다고 가난 범죄 경제실패 등이 환경 탓이라는 이유에서 개인책임을 면제하고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는 사회주의적 ‘결정론’이 타당하다는 건 아니다. 오히려 환경에 의한 행동변화 가능성에서 책임정신의 중요한 기능을 찾을 수 있다. 각 개인이 자신의 행동을 보다 좋은 방향으로 변동시키는 기능이 바로 그것이다. 애덤 스미스와 하이에크도 ‘책임이 뒤따르니까 신중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사회적 교육 측면에서 개인 책임의 중요성을 찾았다.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책임진다는 믿음이 있을 때 사람은 투자 생산 소비를 신중하게 선택하고 자기 일에 노력과 열정을 쏟는다. ‘아마추어’를 ‘프로’로 길들이는 게 책임 정신이라는 말이다.

그런 믿음을 가진 사람이 사는 사회에서만이 창조경제가 가능하고 빈곤과 실업의 극복과 보편적 번영이 가능하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그러나 가난과 실패를 환경 탓으로 돌리는 사람에게는 성공 기회도 없고 기껏해야 정치를 이용해 타인들이 번 돈을 뜯어먹는 무능하고 비생산적 활동만 있을 뿐이다. 책임 정신을 제대로 작동시키기 위해선 탈규제탈관료화를 통해 개인과 기업이 마음껏 활동할 수 있는 자유를 확립해야 한다. 자유가 없으면 책임윤리가 기능할 수 없고, 책임정신이 없으면 온정적 정부의 경제 개입으로 자유는 소멸된다. 그래서 자유와 책임은 서로 분리할 수 없는 자유헌법의 기본가치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무상급식보육제도, 강압적인 건강보험, 은행이 망해도 저축을 보호하는 예금보험제도, 빚을 권장하는 통화금융정책, 손해를 세금으로 충당하는 독점적 공기업, 나라 곳간은 안중에도 없는 복지만능주의 등 수많은 정부 간섭은 시민을 무책임하게 만들고 그 결과로 경제는 불안해진다.

첩첩이 쌓인 정부 간섭을 걷어내 스스로 책임지는 성숙한 시민을 위한 경제자유를 확립하는 게 번영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민경국 < 강원대 경제학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