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럼프 날린 20m 이글 퍼트…크리머 역전극

HSBC챔피언스, 무뇨스와 연장 사투 끝에 우승
3년8개월만에 감격의 10승…캐리 웹 막판 무너져
폴라 크리머가 2일 미국 LPGA투어 HSBC위민스챔피언스 연장 두 번째 홀에서 우승을 확정짓는 20m짜리 이글 퍼팅을 성공시킨 뒤 환호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연장 두 번째 홀. 홀까지 남은 거리는 20m 정도 돼 보였다. 2단 그린 아래쪽으로 쳐야 하는 내리막 라인의 어려운 퍼트라 자칫하면 3퍼트를 할 수도 있는 거리였다. 미국 LPGA투어에서 9승을 거둔 뒤 3년8개월간 우승컵과 인연을 맺지 못하던 폴라 크리머(미국)의 퍼터를 떠난 공은 2단 그린 끝에서 90도로 꺾어진 뒤 홀을 향해 가더니 홀 속으로 사라졌다. 이글이다. 3.5m 버디 퍼트를 기다리고 있던 아사하라 무뇨스(스페인)에게 퍼트할 기회조차 주지 않은 극적인 우승 확정 순간이었다.

크리머는 두 팔을 번쩍 들고 펄쩍펄쩍 뛰더니 무릎을 꿇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지난해 12월 비행기 조종사인 데릭 히스(33·미국)와 약혼을 발표한 크리머는 우승이 확정되자 바로 약혼자에게 문자를 보내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5위로 출발한 크리머는 2일 싱가포르 센토사 골프장의 세라퐁코스(파72·6600야드)에서 열린 미국 LPGA투어 HSBC위민스챔피언스(총상금 140만달러) 마지막날 3언더파 69타를 쳐 최종합계 10언더파 278타로 무뇨스와 동타를 이뤘다. 둘은 연장 첫 번째 홀에서 4m 내외 비슷한 거리의 버디 퍼트를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연장 두 번째 홀에서 크리머는 페어웨이 우드를 꺼내들고 ‘2온’을 시도하는 공격적인 전략을 구사했다. 이 홀은 그린 왼쪽이 해저드, 오른쪽이 벙커로 둘러싸여 2온 시도가 쉽지 않다. 크리머의 두 번째 샷은 장애물을 피해 그린 오른쪽에 오르는 데 성공했다. 안전한 코스 공략을 택한 무뇨스는 세 번째 웨지샷을 3.5m 지점으로 보내 역시 버디 기회를 만들었으나 크리머의 이글 성공으로 우승컵을 내줘야 했다.

크리머는 “너무 극적이라 가슴이 벅차다”며 “만약에 공이 홀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홀을 2m 이상 지나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2005년 LPGA투어에 데뷔하자마자 2승을 올린 크리머는 2008년까지 8승을 올리며 미국의 희망으로 떠올랐으나 이후 부상 등으로 슬럼프를 겪었다. 2010년 7월 US여자오픈에서 첫 메이저대회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부활했으나 최근 4년 가까이 우승 소식을 전하지 못했다.

전날 선두였던 캐리 웹(호주)은 전반을 마치고 3타 차 선두로 나서 2주 전 호주여자오픈에 이어 마흔한 번째 우승이 눈앞에 보였으나 막판에 무너졌다. 웹은 15번홀(파4)에서 발목이 잡혔다. 2라운드에서도 3번 우드 티샷을 페어웨이 왼쪽 해저드에 빠뜨렸던 웹은 또다시 훅을 내며 티샷한 공을 물로 보내버렸다. 크리머와 동타로 18번홀에 도착해 무리한 버디를 노리다 치명적인 실수를 범하기도 했다. 티샷이 벙커에 빠지자 우드로 꺼내려다 벙커턱을 맞고 탈출에 실패한 것. 네 번째 샷도 그린에 올리지 못하면서 보기를 범해 연장전에도 나가지 못했다.

세계랭킹 1위 박인비(26·KB금융그룹)가 이날 보기 없이 버디 4개를 잡아 합계 7언더파 281타로 공동 4위에 자리했다. 유소연(24·하나금융그룹)도 보기 없이 버디만 6개를 낚는 쾌조의 플레이를 자랑하며 박인비와 함께 공동 4위에 올랐다. 박인비를 추격하는 세계랭킹 2위 수잔 페테르센(노르웨이)도 2타를 줄여 공동 4위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한은구 기자 to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