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메트로 "지하철 전동차 구입, 국제입찰로 변경"

뉴스 & 분석 - 철도산업, 국산 보호막 없어져 '비상'

中 CNR 등 입찰 준비…저가공세 가능성
서울시 "경쟁 입찰하면 2020년 161억원 절감"
서울메트로가 노후 지하철 전동차 교체를 국제 입찰 방식으로 바꾸기로 하면서 철도차량 업체와 관련 부품업체에 비상이 걸렸다. 가격 경쟁에 밀려 수주에 실패하면 국내 철도산업 기반이 통째로 흔들릴 수 있어서다.

6일 서울시 등에 따르면 서울메트로는 이르면 오는 5월 실시될 서울 지하철 2호선의 전동차 구매 방식을 국제 경쟁 입찰로 실시할 방침이다. 이번 구매사업 규모는 180량, 2200억원 정도로 추정된다.

서울메트로는 2004년과 2007년 1, 2차에 걸친 총 334량 규모의 지하철 2호선 차량 구매를 ‘내자 방식’으로 했다. 해외 업체를 참여시키지 않고 국내 업체에만 기회를 줬다. 기존 차량 부품과의 호환성 등도 고려했지만 무엇보다 국내 철도산업을 육성하려는 취지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비용 절감 등을 위해 해외 업체 참여를 전격 허용키로 한 것이다. 이병두 서울메트로 차량처장은 “서울시와 서울메트로의 재정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오래전부터 경쟁 입찰로 단가를 낮추는 방안을 검토해왔다”고 설명했다. 수주 경쟁력에서 한발 앞선 해외 업체가 들어오면 국내 업체가 밀릴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된다. 전 세계 매출 1위의 철도차량 제작사인 중국 CNR과 최고 경쟁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는 캐나다 봄바르디어, 일본 히타치 등이 이미 입찰 참여 의사를 내비치고 있다. 몇몇 해외 업체는 서울메트로를 방문해 프레젠테이션까지 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CNR과 봄바르디어는 인건비가 싼 중국에 생산공장을 두고 있어 가격 경쟁력 측면에서 국내 업체를 훨씬 앞설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로템 관계자는 “국내 납품 실적이 없는 해외 업체가 입찰에 참가하면 초기 시장 진입을 위해 파격적인 저가 공세를 펼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국내 철도차량시장 규모는 연평균 5300억원 정도다. 73조원에 달하는 세계 시장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지난 한 해 동안 국내에서 새롭게 발주된 철도차량은 2151억원에 불과했다. 이런 작은 시장에 글로벌 업체들이 몰려들면 고스란히 시장을 빼앗길 수밖에 없다는 게 국내 철도차량업계의 하소연이다. 철도차량 관련 부품업체들의 피해도 불가피할 것으로 우려된다. 260여개 국내 철도 부품업체는 연평균 매출이 13억원에 불과할 정도로 영세하다. 다품종 소량생산 방식이어서 상위 80개 업체의 연평균 매출도 40억원에 그치고 있다. 현대로템 등이 수주를 한 건만 놓쳐도 엄청난 타격을 받을 수 있다. 한국철도차량공업협회 관계자는 “철도산업은 국제 경쟁 체제를 도입하기에 앞서 국가 차원의 지원부터 이뤄져야 할 상황”이라며 “해외 업체가 일감을 가져가면 나중에 유지 보수 등에도 어려움이 많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 고위 관계자는 “국내 시장은 사실상 몇몇 업체가 과점하고 있어 가격이 과도하게 높게 책정된 측면이 있다”며 “글로벌 컨설팅업체 맥킨지에 의뢰한 결과 경쟁 입찰로 가면 2020년까지 161억원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고 했다. 또 “경쟁으로 원가를 낮추는 게 시장 원리이고 시민들의 세금을 줄여주는 길”이라고 덧붙였다.

서욱진/강경민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