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짱 토론] 가계부채 해결에 한은 발권력 동원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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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조원을 넘어선 가계부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은행이 나섰다. 지난달 27일 한은은 주택금융공사가 발행하는 주택저당증권(MBS)을 공개시장 조작 대상 채권에 포함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공개시장 조작은 한은이 금융회사들을 상대로 국공채 등을 사고파는 방식으로 시중의 통화량을 조절하는 수단이다. 여기에 MBS가 포함되면 MBS의 신용도가 높아져 MBS를 자산으로 하는 고정금리형 장기대출 금리가 낮아지고 결과적으로 장기 고정금리 대출을 받는 가계의 빚 부담이 줄어들 수 있다. 한은은 또 MBS 발행 확대를 위해 실시하는 주택금융공사의 증자에도 참여하기로 했다.
이 같은 한은 방침에 대해 일부에서 ‘발권력 남용’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거시경제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한은의 발권력을 특정 정책수단을 위해 동원하는 게 맞느냐는 것이다. 보통 무위험 채권으로 분류되는 국채 등을 대상으로 하는 공개시장 조작이 MBS까지 확대되면 한은이 손실을 떠안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MBS는 주택금융공사가 보증하는 증권이기는 하지만 국공채나 정부 보증채에 비해 신용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다. 반면 한국 경제의 최대 난제로 떠오른 가계부채 문제를 한은이 방치해선 안 된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가계부채가 악화되면 금융 안정성이 떨어지는 만큼 한은의 개입이 정당하다는 논리다. 일부에서 제기하는 한은의 손실 우려도 과장됐다는 게 이들의 지적이다. 한은도 이런 점을 감안해 MBS를 사더라도 1주일 정도 뒤에 다시 되파는 환매조건부증권(RP) 매매 방식으로만 사고팔기로 했다는 것이다. 박성욱 한국금융연구원 거시·국제금융연구실장과 오정근 아시아금융학회장에게 양쪽 입장을 들어봤다.
찬성 한은 손실 위험 크지 않아…발권력 남용 비판은 과장
가계대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택저당증권(MBS)을 한국은행의 환매조건부증권(RP) 매입 대상에 포함하는 방안이 최근 발표됐다. 이에 대해 중앙은행의 발권력을 남용한다는 비판이 있지만 몇 가지 점에서 과장된 측면이 있다.
중앙은행은 공개시장 조작을 통해 시중에 유동성을 공급한다. 공개시장 조작이란 한은이 금융회사를 상대로 국채 등 증권을 사고팔아 시중 화폐의 양이나 금리 수준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한은의 가장 대표적인 통화정책 수단이다.
여기에는 증권의 ‘직접 매입’과 ‘RP 매입’ 두 가지 방식이 쓰인다. 직접 매입과 달리 RP 매입은 일정 기간 이후에 되팔 것을 약속하고 특정 증권을 매입하는 거래다. 증권 매입이라는 형식을 취하지만 실질적으로는 해당 증권을 담보로 일정 기간 자금을 빌려주고 나서 만기가 되면 담보를 돌려주고 원금과 이자를 받는 방식이다. 따라서 RP 매입은 직접 매입만큼 위험이 크지 않다. 한은이 MBS를 직접 매입했을 때는 MBS 가치에 문제가 생길 경우 바로 손실을 입는다. 하지만 RP 매입을 했을 때는 MBS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거래 상대방인 금융회사가 빌린 자금을 갚으면 손실이 발생하지 않을 수 있다. RP 매입의 위험도가 단순 매입보다 낮기 때문에 대상 증권의 범위도 단순 매입보다 넓게 설정할 여지가 생긴다.
주택저당증권 RP매입, 직접매입보다 신용위험 낮아
RP 매입은 신용위험에 노출될 가능성도 제한적이다. 한은의 RP 매입이 자주 일어나는 거래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은 평상시 시중 유동성이 남아돌아 흡수가 필요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한은은 유동성 흡수를 위해 ‘RP 매각’을 주로 한다.
다른 나라에서도 중앙은행의 RP 매입 증권 범위가 국채 같은 무위험 채권으로 한정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12개 주요국 중앙은행을 조사한 국제결제은행(BIS)의 지난해 보고서를 보면 담보증권의 범위는 각국의 통화정책 운영 방식이나 금융시장 여건에 따라 제각각이다. 국고채와 정부 보증채만 인정하는 한은은 대상 증권 범위가 상당히 좁은 편에 속한다.
미국 중앙은행(Fed)의 경우 RP 대상 증권의 범위가 매우 좁다. 주로 20개 미만의 유사한 자산 구성을 가진 대형 국채 전문 딜러와 거래해 유동성을 조절한다. 다만 이들 딜러는 Fed와 거래하기 위한 국채나 정부기관채를 충분히 갖고 있어서 굳이 여러 가지 증권을 RP 대상 증권에 포함시킬 필요가 없다. 반면 유럽중앙은행(ECB)은 RP 대상 증권이 매우 광범위하게 설정돼 있다. ECB의 거래 상대방이 되는 금융회사가 워낙 다양한 데다 이들이 RP 거래에 제공할 수 있는 담보자산도 일률적이지 않아서다.
즉 각국 중앙은행의 RP 거래 대상 증권 범위는 증권의 신용도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거래 상대방인 금융회사가 손쉽게 담보로 제공할 수 있는지도 중요하다. RP 대상 증권의 범위를 지나치게 좁게 설정할 경우 금융회사의 담보 부족으로 유동성을 원활하게 공급할 수 없다.
한국은 고정금리부 장기대출의 비중이 늘고 이에 따라 금융회사의 MBS 보유도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면 한은의 RP 거래 대상 증권에 MBS를 편입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수 있다.
특정 증권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중앙은행의 RP 거래 대상 증권 범위를 확대한 사례는 적지 않다. 캐나다 싱가포르등이 이에 해당한다.
물론 크게 보면 과거보다 한은의 신용위험 노출 정도가 커질 수 있다. 특히 금융회사가 한은과 RP를 거래할 때 대상 증권 가운데 가장 신용도가 낮은 증권만 담보로 제공하는 일종의 ‘역선택’이 나타날 때다. 가계부채 문제 방치해선 안돼…원활한 유동성 공급위한 조치
그러나 한은도 이에 대응, 다양한 조치를 통해 위험 노출 정도를 조절할 수 있다. RP 거래 대상 증권의 신용도나 만기 등을 고려해서 액면가의 일부만 담보가치로 인정하는 헤어커트(haircut)를 두는 것이 대표적이다. 또 RP 거래가 특정 위험 증권으로 쏠리는 것을 막기 위해 집중도에 제한을 둘 수도 있다.
한은의 RP 대상 증권 범위가 넓어지면 금융회사가 위험한 자산을 보유할 유인이 커져 금융회사의 건전성이 나빠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하지만 금융회사의 건전성은 감독당국이 별도의 기준으로 관리하고 있다. 한은의 RP 대상 증권 범위가 변경됐다고 금융회사의 건전성이 큰 영향을 받을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금융회사들이 상대적으로 빈도가 낮은 한은과의 RP 거래 때문에 보유 자산의 구성을 대폭 변경할 가능성은 크지 않기 때문이다.
금융회사는 MBS 외에도 다양한 증권을 보유하고 있는데 왜 MBS만 포함시켜야 하느냐는 주장도 있을 수 있다. RP 거래 범위가 넓으면 거래 상대방인 금융회사가 보유한 다양한 증권을 유동성 확보에 이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한은이 해당 증권의 신용도나 시장 위험 등을 일일이 평가해 헤어커트를 정해야 할 경우 비용이 발생하고, 표준화된 거래라는 RP 거래의 이점을 충분히 살리기 어렵다. 한은은 이처럼 상충하는 비용과 편익을 모두 고려해 적절한 수준에서 RP 대상 증권의 범위를 정해야 한다.
박성욱 < 금융연구원 실장 >
반대 정책금융 편법지원 안될 말…공공기관 개혁 방향에 역행
정부는 최근 가계의 금리 부담을 완화하는 가계부채대책을 내놨다. 특징은 이를 위해 한국은행의 발권력을 이용한다는 점이다. 주택금융공사의 정책모기지(주택담보대출) 공급 확대 방안이 그렇다. 여기에 필요한 대출자금을 마련하려면 주택금융공사가 주택저당증권(MBS)을 발행해야 한다. 그러나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우선 주택금융공사는 MBS 발행 한도를 대부분 소진해 추가 발행이 어려운 상황이다. 한국주택금융공사법에 따라 MBS를 자기자본의 최대 50배까지 발행할 수 있지만 재정 건전성을 위해 35배 이내에서 발행해왔다. 주택금융공사의 납입자본금 1조4316억원에 이익잉여금을 합친 자기자본금은 1조6000억원이다. 그 35배인 56조원을 사실상의 발행 한도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최근 대출수요가 늘면서 상환액을 뺀 MBS 발행잔액은 53조7000억원(2013년 말)에 달했다. 자본금을 확충하지 않고서는 MBS 발행이 사실상 어려운 상황이다. 주택금융공사가 MBS를 발행해도 최근 채권시장 부진 탓에 소화하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점도 문제다.
금융배분 효율성 떨어지고 한은 통화정책 독립성 훼손
정부가 내놓은 해결책은 다음과 같다. 우선 한은과 정부가 2014~2017년 주택금융공사에 4000억원을 추가 출자해서 MBS 추가 발행 여지를 만들어 줄 계획이다. 현재 납입자본금 1조4316억원 가운데 한국은행이 31.1%를 출자하고 있다. 정부는 또 추가 발행된 MBS가 원활하게 소화되도록 주택금융공사 MBS를 한은의 공개시장조작 대상 증권에 포함하기로 했다.
한은의 공개시장조작 대상 증권은 효율성과 신용리스크를 감안해 국채, 정부보증채, 금융통화위원회가 정하는 기타 유가증권으로 제한하고 있다. 다만 2008년 9월 미국 금융위기를 촉발시킨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신용경색을 완화하기 위해 대상 증권을 한시적(2008년 11월~2009년 11월)으로 은행채와 일부 특수채로 확대한 적이 있다.
주택금융공사 MBS를 한은의 공개시장조작 대상 증권에 포함할 경우 공개시장조작 대상 금융회사들이 큰 부담 없이 MBS를 보유할 수 있게 된다. 한은의 채권매입 금리가 낮기 때문에 MBS 발행금리가 다소 낮아져 가계의 금리 부담도 다소 완화될 수 있을 전망이다.
하지만 정책 구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문제가 드러난다. 결국 △한국은행이 주택금융공사 자본금에 추가 출자하고 △그렇게 해서 늘어난 자본금을 토대로 주택금융공사가 발행한 MBS를 다시 한국은행이 공개시장조작 대상에 포함해 매입해주는 것이다. 사실상 한국은행이 주택금융공사의 정책금융을 지원하는 편법적인 구조다.
그러나 발권력을 동원하는 통화정책은 거시경제 전체의 안정을 위해 보편적으로 사용돼야 한다. 한은 발권력이 주택금융공사라는 특수한 정책금융에 편법으로 사용되면 어떻게 될까. 과도한 통화팽창을 일으키거나 다른 부문 금융이 상대적으로 위축되는 등 금융 배분의 효율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
게다가 한은을 정부의 정책금융 수단으로 이용하면서, 결국 한은 통화정책의 독립성과 신뢰도를 훼손할 우려가 높다. 따라서 중앙은행 발권력을 이용한 정책금융 지원은 위기시 예외적으로, 제한적인 범위에서 실시하는 것이 원칙이다. 가계 금리부담 줄이려면 기준금리 인하가 바람직
박근혜 정부의 공공기관 개혁 방향에도 역행한다. 정부는 공공기관을 이용한 정책수행을 줄이고, 공공기관 부채를 줄이기 위해 개혁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현재 주택금융공사는 부채만 5조원에 이른다. 이제는 한은의 추가 출자와 MBS 매입 없이는 영업도 어려워졌다. 이렇게 되자 정부는 서민주택금융이라는 미명 아래 다시 편법을 계획하고 있다.
서민가계의 금리부담 완화를 위해 정책자금 지원이 필요하다면 재정자금으로 하는 것이 원칙이다. 굳이 한은이 나서야 한다면, 주택금융공사에 의한 편법 지원 대신 기준금리 인하가 바람직하다. 지원 기간도 한시적이어야 한다. 미국 중앙은행(Fed)은 3차 양적완화 차원에서 MBS를 매입할 때 한도와 시기를 정해놓았다.
일부에선 한은법에 명시된 ‘금융 안정’을 위해 이번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한은법의 금융안정기능은 금융부실 증가로 인한 금융제도의 체계적 위험(systemic risk)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최종 대부자와 같은 중앙은행 고유의 금융안정기능을 말하는 것으로, 이번과 같은 정책금융지원은 해당되지 않는다.
과거 저축은행 사태가 불거진 뒤 한국은행은 금융안정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며 금융회사 단독검사권을 요구했다. 하지만 정부는 ‘안 된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던 정부가 이번엔 금융안정기능 운운하며 정책금융 편법지원을 실시하다니 견강부회가 아닐 수 없다.
시장기능에 의한 주택공급을 구축하는 역효과도 우려된다. 시중 금융회사보다 낮은 금리의 주택금융공사 주택대출은 갈수록 주택공급의 정책금융 의존도를 높이기 때문이다. 민간 금융회사의 주택금융을 활성화하는 등 주택금융도 시장기능을 제고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오정근 < 아시아금융학회장 >
■ 읽을 만한 자료△가계부채 구조개선 촉진방안(금융위원회, 2014.2)
△최근 국내외 금융시장 동향 및 가계부채 연착륙 추진평가(금융위원회, 2013.10)
△가계부채의 확대에 따른 리스크요인 점검(한국금융연구원, 2013.11)
△한국 경제의 불확실성 진단과 대응(한국국제금융학회·한국금융연구원 세미나, 2014.1)
△가계부채 부실위험에 대한 스트레스테스트(한국은행, 2013.12)
△한국의 통화정책 (한국은행, 2013.1)
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
공개시장 조작은 한은이 금융회사들을 상대로 국공채 등을 사고파는 방식으로 시중의 통화량을 조절하는 수단이다. 여기에 MBS가 포함되면 MBS의 신용도가 높아져 MBS를 자산으로 하는 고정금리형 장기대출 금리가 낮아지고 결과적으로 장기 고정금리 대출을 받는 가계의 빚 부담이 줄어들 수 있다. 한은은 또 MBS 발행 확대를 위해 실시하는 주택금융공사의 증자에도 참여하기로 했다.
이 같은 한은 방침에 대해 일부에서 ‘발권력 남용’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거시경제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한은의 발권력을 특정 정책수단을 위해 동원하는 게 맞느냐는 것이다. 보통 무위험 채권으로 분류되는 국채 등을 대상으로 하는 공개시장 조작이 MBS까지 확대되면 한은이 손실을 떠안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MBS는 주택금융공사가 보증하는 증권이기는 하지만 국공채나 정부 보증채에 비해 신용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다. 반면 한국 경제의 최대 난제로 떠오른 가계부채 문제를 한은이 방치해선 안 된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가계부채가 악화되면 금융 안정성이 떨어지는 만큼 한은의 개입이 정당하다는 논리다. 일부에서 제기하는 한은의 손실 우려도 과장됐다는 게 이들의 지적이다. 한은도 이런 점을 감안해 MBS를 사더라도 1주일 정도 뒤에 다시 되파는 환매조건부증권(RP) 매매 방식으로만 사고팔기로 했다는 것이다. 박성욱 한국금융연구원 거시·국제금융연구실장과 오정근 아시아금융학회장에게 양쪽 입장을 들어봤다.
찬성 한은 손실 위험 크지 않아…발권력 남용 비판은 과장
가계대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택저당증권(MBS)을 한국은행의 환매조건부증권(RP) 매입 대상에 포함하는 방안이 최근 발표됐다. 이에 대해 중앙은행의 발권력을 남용한다는 비판이 있지만 몇 가지 점에서 과장된 측면이 있다.
중앙은행은 공개시장 조작을 통해 시중에 유동성을 공급한다. 공개시장 조작이란 한은이 금융회사를 상대로 국채 등 증권을 사고팔아 시중 화폐의 양이나 금리 수준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한은의 가장 대표적인 통화정책 수단이다.
여기에는 증권의 ‘직접 매입’과 ‘RP 매입’ 두 가지 방식이 쓰인다. 직접 매입과 달리 RP 매입은 일정 기간 이후에 되팔 것을 약속하고 특정 증권을 매입하는 거래다. 증권 매입이라는 형식을 취하지만 실질적으로는 해당 증권을 담보로 일정 기간 자금을 빌려주고 나서 만기가 되면 담보를 돌려주고 원금과 이자를 받는 방식이다. 따라서 RP 매입은 직접 매입만큼 위험이 크지 않다. 한은이 MBS를 직접 매입했을 때는 MBS 가치에 문제가 생길 경우 바로 손실을 입는다. 하지만 RP 매입을 했을 때는 MBS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거래 상대방인 금융회사가 빌린 자금을 갚으면 손실이 발생하지 않을 수 있다. RP 매입의 위험도가 단순 매입보다 낮기 때문에 대상 증권의 범위도 단순 매입보다 넓게 설정할 여지가 생긴다.
주택저당증권 RP매입, 직접매입보다 신용위험 낮아
RP 매입은 신용위험에 노출될 가능성도 제한적이다. 한은의 RP 매입이 자주 일어나는 거래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은 평상시 시중 유동성이 남아돌아 흡수가 필요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한은은 유동성 흡수를 위해 ‘RP 매각’을 주로 한다.
다른 나라에서도 중앙은행의 RP 매입 증권 범위가 국채 같은 무위험 채권으로 한정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12개 주요국 중앙은행을 조사한 국제결제은행(BIS)의 지난해 보고서를 보면 담보증권의 범위는 각국의 통화정책 운영 방식이나 금융시장 여건에 따라 제각각이다. 국고채와 정부 보증채만 인정하는 한은은 대상 증권 범위가 상당히 좁은 편에 속한다.
미국 중앙은행(Fed)의 경우 RP 대상 증권의 범위가 매우 좁다. 주로 20개 미만의 유사한 자산 구성을 가진 대형 국채 전문 딜러와 거래해 유동성을 조절한다. 다만 이들 딜러는 Fed와 거래하기 위한 국채나 정부기관채를 충분히 갖고 있어서 굳이 여러 가지 증권을 RP 대상 증권에 포함시킬 필요가 없다. 반면 유럽중앙은행(ECB)은 RP 대상 증권이 매우 광범위하게 설정돼 있다. ECB의 거래 상대방이 되는 금융회사가 워낙 다양한 데다 이들이 RP 거래에 제공할 수 있는 담보자산도 일률적이지 않아서다.
즉 각국 중앙은행의 RP 거래 대상 증권 범위는 증권의 신용도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거래 상대방인 금융회사가 손쉽게 담보로 제공할 수 있는지도 중요하다. RP 대상 증권의 범위를 지나치게 좁게 설정할 경우 금융회사의 담보 부족으로 유동성을 원활하게 공급할 수 없다.
한국은 고정금리부 장기대출의 비중이 늘고 이에 따라 금융회사의 MBS 보유도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면 한은의 RP 거래 대상 증권에 MBS를 편입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수 있다.
특정 증권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중앙은행의 RP 거래 대상 증권 범위를 확대한 사례는 적지 않다. 캐나다 싱가포르등이 이에 해당한다.
물론 크게 보면 과거보다 한은의 신용위험 노출 정도가 커질 수 있다. 특히 금융회사가 한은과 RP를 거래할 때 대상 증권 가운데 가장 신용도가 낮은 증권만 담보로 제공하는 일종의 ‘역선택’이 나타날 때다. 가계부채 문제 방치해선 안돼…원활한 유동성 공급위한 조치
그러나 한은도 이에 대응, 다양한 조치를 통해 위험 노출 정도를 조절할 수 있다. RP 거래 대상 증권의 신용도나 만기 등을 고려해서 액면가의 일부만 담보가치로 인정하는 헤어커트(haircut)를 두는 것이 대표적이다. 또 RP 거래가 특정 위험 증권으로 쏠리는 것을 막기 위해 집중도에 제한을 둘 수도 있다.
한은의 RP 대상 증권 범위가 넓어지면 금융회사가 위험한 자산을 보유할 유인이 커져 금융회사의 건전성이 나빠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하지만 금융회사의 건전성은 감독당국이 별도의 기준으로 관리하고 있다. 한은의 RP 대상 증권 범위가 변경됐다고 금융회사의 건전성이 큰 영향을 받을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금융회사들이 상대적으로 빈도가 낮은 한은과의 RP 거래 때문에 보유 자산의 구성을 대폭 변경할 가능성은 크지 않기 때문이다.
금융회사는 MBS 외에도 다양한 증권을 보유하고 있는데 왜 MBS만 포함시켜야 하느냐는 주장도 있을 수 있다. RP 거래 범위가 넓으면 거래 상대방인 금융회사가 보유한 다양한 증권을 유동성 확보에 이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한은이 해당 증권의 신용도나 시장 위험 등을 일일이 평가해 헤어커트를 정해야 할 경우 비용이 발생하고, 표준화된 거래라는 RP 거래의 이점을 충분히 살리기 어렵다. 한은은 이처럼 상충하는 비용과 편익을 모두 고려해 적절한 수준에서 RP 대상 증권의 범위를 정해야 한다.
박성욱 < 금융연구원 실장 >
반대 정책금융 편법지원 안될 말…공공기관 개혁 방향에 역행
정부는 최근 가계의 금리 부담을 완화하는 가계부채대책을 내놨다. 특징은 이를 위해 한국은행의 발권력을 이용한다는 점이다. 주택금융공사의 정책모기지(주택담보대출) 공급 확대 방안이 그렇다. 여기에 필요한 대출자금을 마련하려면 주택금융공사가 주택저당증권(MBS)을 발행해야 한다. 그러나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우선 주택금융공사는 MBS 발행 한도를 대부분 소진해 추가 발행이 어려운 상황이다. 한국주택금융공사법에 따라 MBS를 자기자본의 최대 50배까지 발행할 수 있지만 재정 건전성을 위해 35배 이내에서 발행해왔다. 주택금융공사의 납입자본금 1조4316억원에 이익잉여금을 합친 자기자본금은 1조6000억원이다. 그 35배인 56조원을 사실상의 발행 한도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최근 대출수요가 늘면서 상환액을 뺀 MBS 발행잔액은 53조7000억원(2013년 말)에 달했다. 자본금을 확충하지 않고서는 MBS 발행이 사실상 어려운 상황이다. 주택금융공사가 MBS를 발행해도 최근 채권시장 부진 탓에 소화하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점도 문제다.
금융배분 효율성 떨어지고 한은 통화정책 독립성 훼손
정부가 내놓은 해결책은 다음과 같다. 우선 한은과 정부가 2014~2017년 주택금융공사에 4000억원을 추가 출자해서 MBS 추가 발행 여지를 만들어 줄 계획이다. 현재 납입자본금 1조4316억원 가운데 한국은행이 31.1%를 출자하고 있다. 정부는 또 추가 발행된 MBS가 원활하게 소화되도록 주택금융공사 MBS를 한은의 공개시장조작 대상 증권에 포함하기로 했다.
한은의 공개시장조작 대상 증권은 효율성과 신용리스크를 감안해 국채, 정부보증채, 금융통화위원회가 정하는 기타 유가증권으로 제한하고 있다. 다만 2008년 9월 미국 금융위기를 촉발시킨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신용경색을 완화하기 위해 대상 증권을 한시적(2008년 11월~2009년 11월)으로 은행채와 일부 특수채로 확대한 적이 있다.
주택금융공사 MBS를 한은의 공개시장조작 대상 증권에 포함할 경우 공개시장조작 대상 금융회사들이 큰 부담 없이 MBS를 보유할 수 있게 된다. 한은의 채권매입 금리가 낮기 때문에 MBS 발행금리가 다소 낮아져 가계의 금리 부담도 다소 완화될 수 있을 전망이다.
하지만 정책 구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문제가 드러난다. 결국 △한국은행이 주택금융공사 자본금에 추가 출자하고 △그렇게 해서 늘어난 자본금을 토대로 주택금융공사가 발행한 MBS를 다시 한국은행이 공개시장조작 대상에 포함해 매입해주는 것이다. 사실상 한국은행이 주택금융공사의 정책금융을 지원하는 편법적인 구조다.
그러나 발권력을 동원하는 통화정책은 거시경제 전체의 안정을 위해 보편적으로 사용돼야 한다. 한은 발권력이 주택금융공사라는 특수한 정책금융에 편법으로 사용되면 어떻게 될까. 과도한 통화팽창을 일으키거나 다른 부문 금융이 상대적으로 위축되는 등 금융 배분의 효율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
게다가 한은을 정부의 정책금융 수단으로 이용하면서, 결국 한은 통화정책의 독립성과 신뢰도를 훼손할 우려가 높다. 따라서 중앙은행 발권력을 이용한 정책금융 지원은 위기시 예외적으로, 제한적인 범위에서 실시하는 것이 원칙이다. 가계 금리부담 줄이려면 기준금리 인하가 바람직
박근혜 정부의 공공기관 개혁 방향에도 역행한다. 정부는 공공기관을 이용한 정책수행을 줄이고, 공공기관 부채를 줄이기 위해 개혁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현재 주택금융공사는 부채만 5조원에 이른다. 이제는 한은의 추가 출자와 MBS 매입 없이는 영업도 어려워졌다. 이렇게 되자 정부는 서민주택금융이라는 미명 아래 다시 편법을 계획하고 있다.
서민가계의 금리부담 완화를 위해 정책자금 지원이 필요하다면 재정자금으로 하는 것이 원칙이다. 굳이 한은이 나서야 한다면, 주택금융공사에 의한 편법 지원 대신 기준금리 인하가 바람직하다. 지원 기간도 한시적이어야 한다. 미국 중앙은행(Fed)은 3차 양적완화 차원에서 MBS를 매입할 때 한도와 시기를 정해놓았다.
일부에선 한은법에 명시된 ‘금융 안정’을 위해 이번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한은법의 금융안정기능은 금융부실 증가로 인한 금융제도의 체계적 위험(systemic risk)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최종 대부자와 같은 중앙은행 고유의 금융안정기능을 말하는 것으로, 이번과 같은 정책금융지원은 해당되지 않는다.
과거 저축은행 사태가 불거진 뒤 한국은행은 금융안정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며 금융회사 단독검사권을 요구했다. 하지만 정부는 ‘안 된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던 정부가 이번엔 금융안정기능 운운하며 정책금융 편법지원을 실시하다니 견강부회가 아닐 수 없다.
시장기능에 의한 주택공급을 구축하는 역효과도 우려된다. 시중 금융회사보다 낮은 금리의 주택금융공사 주택대출은 갈수록 주택공급의 정책금융 의존도를 높이기 때문이다. 민간 금융회사의 주택금융을 활성화하는 등 주택금융도 시장기능을 제고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오정근 < 아시아금융학회장 >
■ 읽을 만한 자료△가계부채 구조개선 촉진방안(금융위원회, 2014.2)
△최근 국내외 금융시장 동향 및 가계부채 연착륙 추진평가(금융위원회, 2013.10)
△가계부채의 확대에 따른 리스크요인 점검(한국금융연구원, 2013.11)
△한국 경제의 불확실성 진단과 대응(한국국제금융학회·한국금융연구원 세미나, 2014.1)
△가계부채 부실위험에 대한 스트레스테스트(한국은행, 2013.12)
△한국의 통화정책 (한국은행, 2013.1)
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