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증시 와일드 카드…테이퍼링보다 '날씨 쓰나미'

올 여름 라니냐 현상 재현될 듯
날씨는 대표적인 '팻 테일 리스크'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이상기후 현상이 날로 심해지고 있다. 미국 북동부는 폭설, 영국 등 북유럽과 브라질은 대홍수, 호주와 아르헨티나는 가뭄으로 경제적 피해가 심각하다. 미국의 경우 겨울 폭설로 인해 민간소비가 둔화되면서 작년 4분기 성장률이 한 달 전에 발표한 속보치 3.2%에서 잠정치 2.4%로 0.8%포인트 대폭 하향 조정됐다.

날씨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커지자 관련 신조어도 우후죽순처럼 쏟아지고 있다. 혹한으로 경제활동이 꽁꽁 얼어붙었다는 의미의 ‘프로즈노믹스(froznomics)’와 ‘아이스포칼립스(icepocalypse)’, 폭설로 지구 종말이 올 것이라는 ‘스노마겟돈(snomageddon)’ 등이 대표적이다. 이상기후 현상이 심화되는 가장 큰 요인을 이산화탄소() 배출 규제를 둘러싼 선진국과 신흥국 간 ‘불협화음’에서 찾는 전문가가 많다. 선진국은 배출 규제가 없는 상황에서 제조업을 통해 성장해온 데 비해 신흥국은 이제 막 제조업을 바탕으로 성장을 이끌어야 한다. 이른바 ‘ 배출 책임전가론’이다.

기상 관련 기관에 따르면 겨울 이상한파와 북극 해빙의 여파로 올여름에도 라니냐 현상이 재현될 전망이다. 라니냐는 적도 지역 중앙과 동태평양 수온이 평년보다 0.5도 이상 낮아지는 현상을 말한다. 2011년 여름에도 심하게 나타나 농산물 가격 등에 커다란 파장을 몰고왔다.

라니냐 현상이 심해지면서 지구 곳곳에 이상기후 발생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라니냐가 발생하면 태평양 중앙 부근 대류 흐름은 억제되는 반면 인도네시아 부근의 대류 흐름은 활발해져 기후 패턴에 변화가 생긴다. 이 때문에 가뭄과 홍수, 이상저온, 허리케인 활동 강화 등을 초래해 농산물 등 원자재 생산에 차질을 줄 가능성이 높아진다. 벌써 올겨울
호주 아르헨티나 등 남반구 곡창지대의 극심한 가뭄과 올여름 라니냐 현상이 나타날 경우 ‘애그플레이션(agflation·agriculture+inflation)’이 우려되고 있다. 애그플레이션이란 농산물 가격이 이례적으로 급등하면서 각국 물가가 오르는 현상을 말한다. 신흥국들이 금리를 올리는 상황에서 물가가 오른다면 세계경제에 부담이 될 수 있다.

한 나라의 경제에 미치는 변수는 예측과 관리 가능 여부에 따라 두 가지로 분류된다. 하나는 예측, 관리 가능한 통제변수이고 다른 하나는 알면서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행태변수다. 갈수록 행태변수가 부쩍 늘어난 가운데 인도네시아 일본 등에서 발생한 쓰나미 피해가 상상을 초월한 규모에 이르자 ‘행태변수 쓰나미설’까지 등장하고 있다. 리스크 이론에서는 행태변수를 예측하기 어렵지만 일단 발생하면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테일 리스크(tail risk)’로 분류한다. 통계학에서는 자연·사회·정치·경제현상을 대개 특정한 평균치를 중심으로 대칭을 이루고, 평균치에서 멀어질수록 발생 확률이 낮아지는 종 모양의 정규분포로 설명한다.

최근에는 정규분포 꼬리가 너무 두꺼워져 평균에 집중되는 확률이 낮아 예측력이 떨어지는 ‘팻 테일 리스크(fat tail risk)’가 대두되고 있다. 꼬리 부분이 두껍지 않아야 평균값 의미가 강해지고 통계학적 예측력이 높아지는데 꼬리가 두꺼워지면 평균값 의미가 약해져 예측 자체가 어려워진다.

실제로 서울대와 삼성지구환경연구소 분석에 따르면 한국 국내총생산(GDP)의 52%, 산업의 70~80% 정도가 날씨로부터 직·간접적 영향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날씨가 경제와 시장을 움직인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이제는 날씨 영향력이 경제를 포함한 모든 분야에 걸쳐 커지고 있다. 하지만 날씨 변화의 물리적 영향을 결정하는 요인이 복잡하고 이를 화폐가치로 환산하기 어렵기 때문에 날씨 변화의 영향을 경제적 가치로 평가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이 때문에 날씨 변화 영향에 대해 아직 과학적 정보가 불충분해 영향의 크기를 실제보다 과소 또는 과대 평가할 가능성이 크다.

날씨 변화의 경제적 영향을 평가하는 가장 발전된 계량 모형은 ‘PAGE2002IAM’이다. 이 모형은 ‘균형성장 등가(BGE·Balanced Growth Equivalent)’라는 개념을 도입해 날씨 변화로 미래의 예상 후생손실까지 고려했다. 이 방식으로 측정한 날씨 변화로 인한 1인당 소득의 평균 손실은 최대 14.4%로 추정된다. 상당히 큰 규모다.

올해 세계와 한국 증시에 미칠 최대 와일드카드는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 중국 회사채 디폴트(채무불이행)보다 ‘날씨’가 될 것이라는 시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늦은 감이 있지만 한국 정부와 투자자들도 날씨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과 이에 따른 대책을 마련하는 일을 검토해야 할 때가 됐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