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진 "고구려·백제 창업한 女帝…소서노 리더십에 끌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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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무극 '소서노' 연출가 정혜진 서울예술단 예술감독‘조선 역사상 유일한 창업여대왕으로 고구려와 백제 두 나라를 세운 이.’
24~29일 예술의전당 무대에
춤·음악·드라마 융합한 작품
단재 신채호가 《조선상고사》에서 고대 졸본부여 부족장 연타발의 딸 소서노에 대해 내린 평가다. MBC 드라마 ‘주몽’을 통해 널리 알려진 소서노의 영웅적 삶이 역사적 사실(fact)에 허구(fiction)를 더한 ‘팩션(faction)’극으로 새롭게 탄생한다. 서울예술단이 천안문화재단과 공동 제작해 오는 24~29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 올리는 창작 가무극 ‘소서노’에서다. ‘소서노’는 정혜진 서울예술단 예술감독(55)이 2012년 5월 취임 이후 제작뿐 아니라 연출까지 맡은 첫 작품이다. 무용가인 정 감독이 춤 위주인 무용극이나 댄스 뮤지컬이 아닌 극 중심의 ‘가무극’을 연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연습실에서 만난 그는 “밤낮없이, 주말도 쉬지 않고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천안시로부터 먼저 제작 제의를 받고 소서노란 인물을 조사해 보니 참 매력적인 여인이었어요. 연인 주몽을 도와 고구려를 세우고, 아들 온조와 더불어 백제를 건국한 한민족 역사 유일의 창업 여제로 건국 과정이 남달랐죠. 피비린내 나는 권력의 암투와 전쟁을 통한 영토 확장이 아니라 포용과 화합, 사랑의 이념으로 ‘상생의 길’을 걷는 소서노에게서 21세기 우리 시대가 바라는 지도자의 모습을 봤다고 할까요.”
뮤지컬계 베테랑인 이희준 작가가 “상업 뮤지컬에선 엄두를 낼 수 없는 소재여서 꼭 해보고 싶었다”며 대본을 맡았다. 창작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주몽과 관련된 에피소드는 차고 넘치도록 많지만 소서노에 대한 건 거의 찾을 수 없어서다. 주몽이 아닌 소서노가 주인공인 극을 만들기 위해선 작가적 상상력이 풍부하게 발휘돼야만 했다. 정 감독은 힘닿는 대로 사료를 구해 참고하기는 했지만 역사물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우리 시대의 사회와 문화를 투영해 이제껏 볼 수 없었던 매력적인 여자 영웅 캐릭터가 픽션과 판타지로 창조될 겁니다. 정말 큰 사랑을 하는 인물로 그려져요. 이 시대의 감성에 맞는 현대적인 무대와 의상, 영상을 통해 진부한 사극에서 탈피해 새로운 상상력이 가미된 무대가 펼쳐질 겁니다.”
‘한국적 뮤지컬’을 지향하는 서울예술단 가무극의 특징인 ‘예술적 군무’도 빠지지 않는다. 정 감독은 “검투, 추격, 전쟁 장면 등이 역동적인 춤으로 표현된다”며 “여느 뮤지컬에선 볼 수 없는 시각적인 충족감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제작비 등의 한계로 ‘녹음된 반주’(MR)를 주로 사용해온 서울예술단 공연과는 달리 이 작품에선 13인조 오케스트라가 생음악을 연주한다. “극중 내내 음악이 깔리는 ‘뮤직 스루’ 작품입니다. 음악적 감성을 높여 극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선 라이브 연주가 필요했어요. 한 땀 한 땀 수를 놓아 무늬를 만들어 가듯 춤과 음악과 드라마가 하나로 녹아드는 작품이 될 거예요.”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