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기재부, 숫자를 틀리면 어떡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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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섭 경제부 기자 duter@hankyung.com“벙어리 냉가슴이죠. 정부가 1인당 복리후생비를 부풀려 발표한 뒤 나중에 슬그머니 수정된 숫자를 내놓는 게 말이 됩니까.”
공공기관 간부 A씨는 지난달 27일 발표된 정부의 ‘방만경영 정상화 이행 대책’을 보고 불편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사연은 이렇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12월 공공기관의 방만경영을 바로잡겠다며 주요 기관의 1인당 복리후생비를 공표했다. ‘한국거래소 1488만9000원, 마사회 1310만6000원, 강원랜드 995만원’ 등이었다. 하지만 이들 공공기관의 실제 복리후생비는 이보다 낮았다. 정부 발표 이후 일부 공공기관은 복리후생비가 실제보다 높게 책정됐다며 수정을 요구했다. 재산정 결과는 당초 발표와 제법 차이가 나는 것이었다. 예탁결제원의 경우 1인당 복리후생비는 정부 발표(968만원)보다 440만원 낮은 528만원이었고, 마사회도 1310만원에서 919만원으로 400만원 가까이 줄었다. 20개 방만경영 중점관리대상 공공기관의 1인당 복리후생비 평균은 837만원에서 657만원으로 줄었다.
이 같은 차이가 발생한 이유는 정부가 공공기관마다 다른 복리후생 비용 산정기준을 통일하지 않고 주먹구구식으로 계산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알리오에 공시된 1인당 복리후생비에서 4대 보험료 등 5개 항목을 일률적으로 제외했다. 기관마다 기준이 다른데 정부가 이를 간과한 것이다. 지난달이 돼서야 통일된 기준을 적용했다. 정부는 이에 대해 지난해 12월은 2010~2012년 평균을 기준으로 선정한 것이고 지난달 발표에서는 2013년 기준을 적용했다고 해명했다.
공공기관의 잘못된 경영행태를 바로잡으려는 정부의 의지는 그대로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정확한 검증을 하지 않은 채 시일에 쫓겨 설익은 숫자를 내놓는 것은 문제다. 가뜩이나 개혁에 반발하고 있는 공공노조에 조직적 저항의 빌미를 줄 수도 있다. “공공기관의 잘못된 점을 바로잡겠다면서 명확한 기준을 세우지 못해 혼란만 가중시켰다”는 지적은 타당하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해명해야 한다.
김우섭 경제부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