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늦잠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
‘아침형 인간’ 붐이 일어났던 적이 있다. 일본의 의사 사이쇼 히로시가 2003년에 쓴 ‘인생을 두 배로 사는 아침형 인간’이라는 책이 계기가 됐다. 아침의 한 시간은 낮의 세 시간과 맞먹는다며 아침을 정복하는 자가 성공한다는 논리였다. 성공한 기업 최고경영자(CEO) 대다수가 아침형 인간이라는 사례까지 제시되자 단순한 붐을 넘어 그야말로 대세가 됐다. 지나간 해프닝처럼 들리지만 성공지향성이 강한 한국 사회에서 이 신드롬은 대단했다.

사실 이런 해프닝이 아니더라도 일찍 일어나는 사람=부지런하고 적극적이며, 늦잠 자는 시람=게으르고 수동적이라는 통념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존재해왔다. “아침잠은 인생에서 가장 큰 지출”이라는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의 말이 그런 종류의 격언이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는 유명한 서양 속담도 그래서 나왔을 것이다. 농업적 근면성이 중요했던 시대에 자연스럽게 고정화된 관념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이런 공식이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지 않는다는 게 속속 밝혀지고 있다. ‘시간의 놀라운 발견’의 저자 슈테판 클라인은 아침형과 저녁형 인간은 유전자 차이일 뿐이라고 말한다. 한진규 서울수면센터 원장도 비슷한 주장을 한다. 인간은 정상형 저녁형 아침형 세 가지로 구분되는데 이는 유전자에 따라 결정되는 패턴으로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종달새형과 올빼미형 인간은 타고난다는 얘기로 아침잠이 많은 잠꾸러기들도 변명할 여지가 생긴 셈이다.

여기에서 한 술 더 떠 ‘아침잠’이 긍정적 결과를 가져온다는 연구도 등장했다. 미네소타대 연구진이 등교 시간을 아침 7시30분에서 8시30분~9시로 늦춘 5개 고교 학생 9000여명을 조사한 결과 성적이 오르고 알코올이나 마약 사용률 등도 줄었다고 한다. 사춘기 청소년의 생물학적 시계는 성인보다 2~4시간 정도 늦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연구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영국의 신경학자 사라 제인 블랙모어 역시 유사한 연구결과를 발표한 적이 있다. 청소년들의 이런 수면 리듬은 이후 약간씩 빨라지다가 50대를 지나면서 평균보다 더 빨라진다고 한다. 나이가 들면 아침잠이 없어지는 이유다.

결국 태어날 때부터 늦잠을 자야 하는 사람도 있고 인생주기를 놓고 봐도 늦잠이 필요한 시기도 있다는 얘기다. 주말 아침 늦잠을 즐기는 자녀들을 무조건 탓하는 게 능사만은 아닌 것 같다. 기상 시간이 점점 빨라지기 시작하는 50대에 접어들었다면 더욱 그렇다.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