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익 내팽개친 '원자력 방호법' 늑장 처리

자칫하다 우리나라가 국가 망신을 톡톡히 당하게 생겼다. ‘원자력시설 등의 방호 및 방사능 방재 대책법’(원자력 방호법) 얘기다. 박근혜 대통령이 24, 25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핵안보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전, 이 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면 한국은 국제 외교무대에서 아주 곤혹스런 상황에 처하게 된다.

얘기인즉슨 이렇다. 2012년 3월 서울에서 열린 핵안보정상회의 당시 의장국이었던 우리나라는 국제협약인 핵테러억제협약과 핵물질방호협약의 발효를 위한 국내법 개정을 2014년까지 마치겠다고 각국 정상 앞에서 공약했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이에 따라 2012년 8월 원자력 방호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법안 자체는 특별한 내용도 없다. 핵 범죄 구성 요건과 위법행위에 따른 처벌 사항을 명확히 한 정도다. 여야 간 이견이 있을 소지도 거의 없다. 문제는 법안 발의 19개월이 다 되어가도록 여야 모두 법 개정을 방치해왔다는 데 있다. 정부 역시 넋놓고 있다가 대통령의 핵안보정상회의 참석이 코앞으로 다가오자 총리가 국회의장을 만나고 국회를 방문하는 등 뒤늦게 호들갑을 떨고 있다. 어제는 박 대통령까지 직접 유감을 표명하며 국회 통과를 읍소했지만 민주당은 방송법 개정안 등 다른 112개 법안과 연계처리를 고집하며 원자력 방호법 단독 처리에 응하지 않고 있다.

만약 다음주까지 법 통과가 안 되면 한국의 국가 위신은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은 정상회의에서 원자력 시설 테러를 막기 위한 핵물질방호협약이 올해까지 발효될 수 있도록 각국에 이행을 촉구할 예정이다. 그런데 정작 우리나라에서 필요한 법개정을 못한 상태라면 할 말이 없어진다. 박 대통령의 다급한 호소도 이 때문이다. 원자력 방호법을 방송법 등 전혀 관련 없는 법과 연계시켜서는 안 된다. 더구나 방송법은 그 자체로 언론자유를 훼손시킨다는 논란이 있다. 정부 여당도 할 말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당장 생색 안 나는 일이면 아무리 시급한 일도 뒷전으로 밀어놓고 본다. 관료들이나 여야 정치인들이나 국제 망신을 당해도 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