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락하는 안경산업 무엇이 문제인가…87%가 영세기업, 자체 브랜드 엄두 못내

선진국 고부가 제품·후발국 중저가품에 치여
안경사 중심 유통구조도 성장 가로막아
품질 불안정…업계 자체 인증제 도입 주장도
서울 남대문시장에 있는 한 안경판매점이 18일 세일 입간판을 놓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허문찬기자 sweat@hankyung.com
프랑스 안경렌즈 전문기업 에실로가 대명광학을 인수하려는 계획이 ‘독과점’ 규정에 걸려 지난 17일 무산됐다. 에실로가 대명광학(국내 2위 업체)을 인수하면 국내시장 점유율이 60%를 넘어 ‘사실상 시장을 독식’하게 된다는 게 공정거래위원회의 설명이다. 1980년대와 1990년대 연평균 20% 이상 성장하며 유망 수출산업으로 주목받던 안경렌즈 산업이 어쩌다가 ‘외국업체 독과점’이 거론될 만큼 쇠락했을까.

(1) 영세성을 극복하지 못했다 국내 안경렌즈 시장은 지난해 7000여억원 규모였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안경렌즈 생산업체 수는 지난 10년간 꾸준히 감소했다. 안경렌즈를 연간 100만개 이상 생산하는 업체 수는 2004년 17개에서 현재 6개로 줄었다. 에실로에 매각된 케미그라스 외에 대명광학 소모 고려광학 씨월드광학 한미스위스광학 등만 남았다.

안경테 생산업체는 영세기업이 대부분이다. 한국안경산업지원센터에 따르면 대구에 있는 425개 국내 안경업체 가운데 87%가 직원 10명 이하 기업(2012년 기준)이었다. 이임자 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한국 안경업체들은 규모가 영세해 자체 브랜드를 키울 여력이 없다”고 말했다.

(2) ‘샌드위치 위기’ 직격탄 미국 리서치회사 트랜스페어런시마켓리서치는 세계 안경시장이 20011년 810억달러에서 2018년 1300억달러로 연평균 7%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패션화와 고령화, 신흥시장 수요 확대 등으로 계속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세계 안경렌즈 시장 1위 기업은 대명광학을 인수하려 했던 에실로다. 세계 시장의 47%를 차지하고 있는 이 기업은 고급 렌즈를 직접 생산하고, 중저가 렌즈는 외국기업을 인수하는 방식으로 점유율을 확대했다. 케미그라스가 2002년 에실로에 넘어갔고, 지난해 1월 대명광학 지분 50%를 넘기는 계약이 체결됐으나 공정위의 불허로 무산됐다.

중국에 이어 베트남 인도 기업이 중저가 제품 시장을 잠식했다. 선진국은 고부가가치 제품을, 신흥시장국은 중저가 제품을 생산하는 국제적 분업구조가 굳어지는 상황에서 한국 안경업체들은 ‘적절한 포지셔닝’을 하는 데 실패했다. (3) 독특한 유통관행도 성장 발목

관세청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11년까지 3년 동안 안경테 수입가격은 69% 오른 반면 안경렌즈 가격은 40% 증가하는 데 그쳤다. 안경테를 패션 소품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 값비싼 제품이 많이 들어오는 반면 안경렌즈는 중저가 제품 비중이 높은 탓이다.

안경사 자격증을 가진 사람만 안경을 팔 수 있는 규제가 국내 안경렌즈 산업 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있다. 안경사가 주인이거나 안경사를 고용한 점포에서만 안경을 만들 수 있다 보니 시장 확대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4) 품질 규격화에 실패

안경 제조업체는 식약처의 의약품제조품질관리기준(GMP)을 적용받는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안경의 품질을 관리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품질 검수를 엄격하게 하고 원산지 표시위반을 방지하려면 ‘업계 자체 품질인증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김기홍 대구가톨릭대 안경광학과 교수는 “품질관리를 강화하고 믿을 수 있는 인증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토종브랜드 육성과 인지도 상승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추가영 기자 gyc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