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진의 예술 경영…신세계에 문화 입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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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달 마지막 수요일, 백화점 문화홀은 클래식 콘서트장여가시간엔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과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를 즐겨 연주하는데 그 솜씨에 피아니스트도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승진한 임원들을 만난 자리에서는 최근 읽은 책 이야기를 하며 일독을 권한다.
매달 '문화가 있는 날' 행사
백화점에 예술경영 접목…브랜드 이미지도 높여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사진) 얘기다. 정 부회장은 과거 한 인터뷰에서 “기업경영을 하지 않았으면 피아니스트가 됐을 것”이라고 했을 정도로 음악에 조예가 깊다. 사무실 책상 한쪽에는 항상 역사 관련 서적을 놓고 틈틈이 펼쳐보는 등 인문학에도 관심이 많다. 정 부회장은 연초 “회사 경영에 직접 관련된 일 다음으로는 문화예술 후원에 가장 주안점을 두자”고 말했다. 메세나(문화예술 후원활동)에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 일환으로 이달 26일부터 매달 마지막 수요일을 ‘문화가 있는 날’로 정해 신세계백화점 본점 등 6개 점포 문화홀에서 클래식 콘서트를 연다. 신세계그룹은 18일 대통령 직속 문화융성위원회와 ‘문화가 있는 날’ 행사에 관한 업무협약을 맺고 10억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무료로 진행되는 이 공연에는 피아니스트 손열음 등 유명 연주자들이 참여한다. 임직원이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매달 마지막 수요일은 ‘노 야근 캠페인’도 벌이기로 했다. 정 부회장은 일찍 문화예술을 경영에 접목시켰다. 신세계의 문화 마케팅은 그가 2010년 경영 일선에 나서면서 본격화했다. 신세계백화점은 2010년 10월부터 매주 토요일 VIP 고객을 초청해 콘서트를 열고 있다. 당시 그는 “실력 있는 연주자들이 마음껏 공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싶다”며 문화예술 후원활동을 확대할 것을 지시했다.
2011년부터는 상·하반기 한 차례씩 국내외 유명 연주자를 초청해 ‘신세계 클래식 페스티벌’을 개최하고 있다. 2011년 8월에는 예술의전당에 야외공연장 ‘신세계스퀘어’를 지었다.
정 부회장이 사내 행사에서 시각장애 어린이 피아니스트와 함께 피아노를 연주한 일화는 유명하다. 그는 2010년 8월 광주신세계 개점 15주년 기념식에서 피아노 공연을 감상하던 중 무대로 올라가 당시 아홉 살이던 시각장애 어린이 유지민 양과 베토벤의 ‘월광소나타’, 쇼팽의 ‘녹턴’ 등 6곡을 함께 연주했다. 2011년 플루티스트 한지희 씨와 결혼한 것도 평소 음악에 관심을 갖고 문화예술계 인사와 교류한 것이 계기가 됐다. 문화예술과 더불어 정 부회장이 강조하는 것은 독서다. 그는 최근 수석부장으로 승진한 직원들을 대상으로 강의하면서 고 김태길 서울대 철학과 교수가 쓴 ‘삶이란 무엇인가’를 소개했다.
지난해 10월부터는 매주 한 번씩 사내방송에 책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신설토록 지시했다. 이 프로그램은 경영 경제 인문 등 다양한 분야에 걸친 책을 소개한다.
정 부회장이 문화예술과 인문학에 관심을 갖게 된 데에는 어머니 이명희 회장이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졌다. 이화여대 생활미술학과를 졸업한 이 회장은 미술과 클래식음악에 조예가 깊다. 이 회장은 정 부회장이 어렸을 때부터 “훌륭한 경영자가 되려면 문화예술을 알아야 하고 인문학을 공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