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대의 1조8000억 사기대출…금감원 간부 최소 2명 연루
입력
수정
지면A4
KT ENS 인감도장 '알바생'이 관리…은행은 세금계산서 확인 안해
주범들, 수백억 '펑펑'…별장·외제차 사고 내연녀에 판교 빌라 선물

◆463차례 걸쳐 1조8335억원 사기 대출

이들은 2008년 5월부터 올해 1월까지 463차례에 걸쳐 KT ENS에 휴대폰 등을 납품했다는 내용의 허위 매출채권을 담보로 16개 은행과 저축은행에서 1조8335억원을 부정 대출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이 가운데 2894억원은 갚지 않았다. 이들은 저가의 휴대폰 주변기기만 제조·유통하던 중 고가의 휴대폰 단말기를 KT ENS에 납품한 것으로 가장했다. 서 대표 등은 본격적인 범죄행각을 벌이기 전인 2007년 세금계산서를 부풀려 김 전 부장에게 제시했다가 들키자 4600만원을 건네며 그를 범행에 끌어들였다.
서 대표와 전 대표 등은 대출받은 돈을 회사 운영자금이나 이전 대출금 돌려막기에 썼다. 또 상장사인 다스텍 지분을 인수하고 경기 시흥 농원, 충북 충주 별장 등을 사들였다. 전 대표는 15억원 상당의 판교 고급빌라를 구입해 내연녀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명품시계와 고급 외제차를 굴리며 호화생활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 금감원 직원 추가 조사 중 전 대표는 경찰 수사가 시작되기 이틀 전인 지난달 4일 홍콩으로 도주했다. 현재 남태평양에 있는 섬인 바누아투공화국에 있는 것으로 경찰은 추정했다.
전 대표가 해외로 도망가는 데는 금감원의 김모 팀장(50) 도움이 컸다는 게 경찰 판단이다. 김 팀장은 금감원이 조사에 착수한 1월29일 서 대표 등 협력업체 대표들에게 전화로 조사 내용을 알려주고 이틀 뒤 강남의 한 식당에서 이들과 만나 협의도 했다. 김 팀장은 서 대표가 2008년 230억원에 구입한 시흥 농원의 지분 30%를 보유하고 있다.
김 팀장은 2005~2007년 금감원 노조위원장을 지낸 인물이다. 그는 서 대표를 2005년부터 알고 지낸 것으로 알려져 도피를 도운 것 외에 사기 대출 과정에서도 도움을 줬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김 팀장 외에도 연루된 금감원 간부가 최소 한 명 더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 관계자는 “금감원 저축은행검사국 박모 팀장을 최근 두 번 불러 참고인 조사를 벌였다”며 “금융위 설치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른 비밀누설 금지 위반 혐의였다”고 말했다. 경찰은 김 팀장이 박 팀장에게 접근해 검사 정보를 빼내 서 대표 등에게 알려준 것으로 보고 있다. 박 팀장은 김 팀장 직전에 금감원 노조위원장을 지냈다.
금감원 관계자는 이에 대해 “박 팀장은 협력업체들과의 관계를 모른 상태에서 단순히 김 팀장의 질문에 답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알바생에게 법인 인감 맡긴 KT ENS
허위 매출채권을 발급하는 데 사용된 KT ENS의 법인 인감도장은 관리자 서랍이나 책상에 놓여 있어 필요한 직원들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다. 보관업무도 아르바이트생이 맡았다. 김 전 부장은 관리자의 감시가 소홀한 점심 때 등을 이용해 이 도장을 몰래 꺼내 서류 위조에 사용했다. 은행들의 허술한 여신심사시스템도 드러났다. 사기대출 성사에 결정적 역할을 한 서류는 KT ENS 협력사들이 낸 허위 세금계산서였다. 경찰은 “위조된 세금계산서 수백 장이 제출됐지만 은행들은 이 계산서가 세무당국에 신고됐는지 등을 확인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김일규/홍선표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