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자본이 침투한 30년대 서울 모습
입력
수정
지면A29
상품의 시대“누구든지 종로 거리를 돌아보면 ‘삽뽀로 비루(삿포로 맥주)’ 혹은 ‘기린 비루(기린 맥주)’라고 적힌 음식점이나 간판을 무수히 볼 수 있다. 신문은 기사 절반, 광고 절반이다. 뒤에 광고를 붙인 버스가 거리를 돌아다녔다.”
권창규 지음 / 민음사 / 468쪽 / 2만3000원
지금과 별로 다르지 않은 이 모습은 1930년대 신문에 담긴 서울 도심 풍경이다. 한국 자본주의 태동기였던 20세기 초반, 소비자를 유혹하기 위한 광고는 이미 무질서하게 삶의 주변에 침투하고 있었다. 《상품의 시대》는 100년 전 근대 상품이 만들어낸 한국 소비사회의 시작을 되짚어 본다. 저자는 대한제국과 식민지 시기에 나온 광고를 비롯해 문학이나 신문, 잡지 등의 기사를 통해 상품 소비가 삶의 중심으로 부상한 근대의 일상을 보여준다.
책은 당시 광고가 자극한 사람들의 욕망을 출세, 교양, 건강, 섹스, 애국 등 다섯 가지 키워드로 요약한다. 입신은 더 이상 양반만의 몫이 아니다. 성공은 누구나 다 해야 하는 권리이자 의무가 됐다. 근대적 취향과 취미가 자리잡았고, 위생과 건강은 국가적 과제로 떠올랐다. 성은 유희의 대상이 됐다. 이 모든 변화는 상품을 통해 투영됐고, 광고는 이 가치들을 삶의 표준으로 제시했다는 것이다. 자본의 침투는 신분사회 붕괴 이후 돈만 가지면 누구나 양반이 될 수 있는 사회로 변모시켰다. 저자는 근대 자본주의 사회의 태동을 살펴보며 오늘날 소비 사회의 현주소를 묻는다.
최종석 기자 ellisic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