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융합'으로 창조경제 한다고?

안현실 논설·전문위원·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
복잡계 경제학자로 유명한 브라이언 아서는 기술의 진화를 ‘조합적 진화(combinational evolution)’로 봤다. ‘개별 기술’이 점진적으로 진화하는 게 아니라 하나의 ‘기술영역(시스템)’이 통째로 다른 것으로 바뀐다는 얘기다. 이게 맞다면 ‘융합’은 생존의 문제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위기의식을 얼마나 갖고 있는지 의문이다.

미래창조과학부가 ‘국가융합기술 발전전략’을 내놨다. 그전 정부의 융합전략과 뭐가 다른지 차이점을 발견하기 어렵다. 융합연구를 떠들지만 기존 연구체제 위에 그저 ‘융합’이라는 숙제 하나를 덩그러니 던져 놓은 형국이다. 정부 출연연구소만 해도 그렇다. 1960~1970년대 개별 업종, 개별 기술을 전제로 만들어진 연구소 체제에서 융합이 가능하겠나. 말이 연구소지 하나의 ‘사일로(silo)’로 전락한 지 오래다. 더 본질적 문제는 융합에 대한 정부의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이다. 현재 정부의 융합 발전전략은 말만 융합이지 과거 개발전략을 꼭 빼닮았다. 만약 계획적 개발에 의해 융합이 터진다면 이런 전략이 더 유효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융합은 ‘계획’이 아니라 ‘우연’에 의해 일어날 가능성이 훨씬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미래학자 존 스마트는 ‘우연에 의한 진화(evolution) 모델’과 ‘계획적 개발(development) 모델’의 차이점에 주목하라고 말한다. 불확실성, 다양성 환경에서는 계획적 개발을 통한 기술적 돌파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우연에 의한 진화’ 대 ‘계획적 개발’ 비율이 95 대 5라는 주장까지 나올 정도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단지 5%에 목숨을 걸고 있다는 얘기밖에 안 된다.

결국 정부 주도의 계획방식 융합은 한계가 있다는 결론이다. 여기서 우리는 시장의 역할에 눈을 돌리게 된다.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계획경제’와 ‘시장경제’의 본질적 차이는 ‘지식 활용’에 있다고 했다. 유용한 지식은 표준적 형태로 확실하게 얻어질 수 있는 지식이 아니라, 때와 장소에 따라 변하는 불확실한, 다양한 종류의 지식이라는 것이다. 이런 지식은 계획경제로서는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다. 지식의 ‘경쟁’과 ‘선택’이 일어나는 시장경제를 죽어도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이다. 융합이야말로 불확실한, 다양한 지식의 전형이다.

그러나 우리의 시장 상황은 어떤가. 이명박 정부가 ‘산업융합촉진법’을 만들었지만 지금까지 이 법이 작동한다는 얘기를 들어 본 적이 없다. 박근혜 정부가 만든 ‘정보통신 진흥 및 융합 활성화 등에 관한 특별법(ICT 특별법)’도 빛 좋은 개살구다. 심박센서를 장착한 갤럭시S5를 두고 의료기기냐, 아니냐로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다. 그런 다음 의료용이 아닌 운동용 및 레저용은 된다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고시 개정안이 나오고서야 판매가 가능해지는 나라다.

시장에서 자유롭게 일어나야 할 융합 경쟁이 온갖 규제로 뒤범벅인 개별법들에 가로막혀 있다. 규제와 동전의 양면인 칸막이 육성법들도 다 포함해서다. 하기야 공정거래위원회까지 툭하면 시장을 잘게 쪼개 경제력 집중 운운하는 판이다. 이런 반(反)융합 환경에서 융합을 외친다는 게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안현실 논설·전문위원·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