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팀 리포트] 범인의 마음으로 '죄' 찾는 동안 프로파일러의 마음은 죄어오고…

심리학 전공자 뽑아 1기 구성
7년째 채용 '0명'…34명 뿐

조직내 업무 이해도 달라
엉뚱한 일 맡아 갈등 잦아
피의자와 심리전에 감정노동도

연수·인센티브 등 복지 강화해야
지난달 경찰 소속의 유명 프로파일러(범죄심리분석관) K씨(41·여)가 뇌종양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경찰 프로파일러 1기인 그는 불모지와도 다름없던 국내 프로파일러 업무에 큰 족적을 남겼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청소년 아동 관련 성범죄와 방화사건 수사에서 국내 최고 전문가였다. 2007년 성탄절 예배를 보고 돌아오다 납치·살해된 초등학생 ‘혜진·예슬이 사건’의 범인을 면담한 사람도 그였다. 각종 뉴스에 나와 프로파일러란 직업을 알렸고, 지상파·케이블 등 각종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범죄 상식을 전달하기도 했다. 그가 지금까지 국내 학술지 등에 남긴 범죄심리 보고서만 10편이 넘는다. 건강에 이상징후가 나타난 건 지난해 3월이었다. 근무 도중 갑자기 손이 마비됐다. 병원에선 ‘뇌종양’ 판정을 내렸다. 치료를 위해 여러 병원을 찾았으나 이미 병세가 악화된 뒤였다. K씨와 함께 프로파일러로 활동한 A씨는 “종종 스트레스로 편두통에 시달렸는데, 그때 미리 치료했으면 좋았을 것”이라며 “경찰로서 자부심이 컸고 힘든 일을 해결한 뒤엔 성과를 동료들과 함께 나눴던 사람”이라고 회상했다.

◆도입 10년, 연쇄살인범 검거 등 큰 성과

프로파일러는 1991년 개봉한 영화 ‘양들의 침묵’을 통해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다. 영화에서 주인공 클라리스 스털링(조디 포스터 분)은 미국 연방수사국(FBI) 소속 프로파일러로 연쇄살인범을 심문하며 다양한 심리전을 펼치는 모습을 보여줬다. 국내에선 영화 ‘추격자’의 배경이 된 연쇄살인범 유영철 사건을 계기로 프로파일러의 중요성이 대두됐다. 경찰청은 2005년 심리학 전공자를 ‘경장’으로 특별채용하는 방식으로 프로파일러를 처음 선발했다. 프로파일러는 2007년 3기 채용을 끝으로 지금까지 추가로 선발되지 않고 있다.

1~3기로 채용된 인원은 40명. 지금까지 현장에서 경찰 프로파일러로 근무하고 있는 인원은 34명이다. 경찰청은 올해 7년 만에 4기를 채용할 계획이다.

경찰 프로파일러가 활동한 10년간 굵직한 사건에서 일궈낸 성과는 적지 않다. 프로파일러들은 25건의 강도 상해 및 살인행각을 벌인 연쇄살인범 정남규(2006년), 부산 여중생 성폭행 살인 사건의 범인 김길태(2010년) 등을 검거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최근 들어 프로파일러의 중요성은 더 부각되고 있다. 범죄 현장에 증거를 남기지 않는 지능범이 늘고 있는 데다 동기를 알 수 없는 연쇄범죄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어서다. 최근 서울 압구정동 인질극 사건에서 볼 수 있듯 인질범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협상을 유도하는 일도 프로파일러의 역할 중 하나로 꼽힌다.

◆감정노동…정신적 스트레스

프로파일러들은 피의자 면담 등의 과정에서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호소한다. 2007년 프로파일러로 경찰의 길에 들어선 B씨는 “대형 사건보다는 크게 알려지지 않았던 살인사건들이 오히려 기억에 많이 남는다”며 “우리도 인간인데 분노와 같은 감정을 억누르며 냉철하게 범인을 대하는 게 쉽지가 않다”고 토로했다. B씨는 2011년 발생한 서울 도화동 임신부 살인사건에서 피의자를 면담했다. 인간으로서 도저히 할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른 피의자를 인터뷰하면서도 ‘분노’는 감춰야 했다. 오히려 정보를 캐내기 위해 범죄자의 심정을 이해하는 노력을 하는 게 쉽지가 않았다고 설명했다.

전직 프로파일러 C씨 역시 ‘감정노동’에서 오는 정신적 압박이 큰 고충이었다고 전했다.

프로파일러는 직업 특성상 ‘범죄자 정보’를 수집해 DB를 구축하는 것이 주된 업무다. 이를 위해 흉악범들에게 미소를 보여야 하고, 차분한 화법으로 설득도 해야 한다. 그는 “범인과 2~5시간가량 면담하다 보면 ‘이 사람이 나중에 출소해 보복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겁도 난다”며 “그런 상황에서도 범죄자 입장에서 생각하고 이해해야 한다는 점이 힘들다”고 말했다.

배상훈 서울디지털대 경찰학과장(경찰 프로파일러 1기)은 “프로파일러는 마치 범인처럼 현장을 분석하고, 피의자들과 고도의 심리전을 벌여야 하는 감정노동자”라며 “그러다 보니 프로파일러끼리 정신과 상담을 하듯 서로를 상담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지난 10년간 작지 않은 성과를 냈지만 국내에서 프로파일러라는 직업이 뿌리내리기까지 갈 길이 멀다는 지적도 나온다. 범인 검거가 우선 목표인 경찰 조직에서 프로파일러들에게 요구되는 능력은 “범인은 이 사람”이라고 지목할 수 있는 역량이다. 이를 위해선 많은 연구와 DB 축적이 필요한데 아직 부족하기 때문이다. 검거 이후 피의자에 대한 프로파일러의 면담이 더 충실하게 이뤄져야 하는데 경찰 조직에선 검거 자체에 주목하는 경향이 강해 프로파일러들에게 엉뚱한 업무가 주어지는 경우도 잦다.

초기 프로파일러 특별채용에 참여했던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는 “지방청마다 배치된 프로파일러 업무를 경찰 조직에서 잘 이해하지 못하다 보니 어떤 프로파일러는 업무가 없어 스트레스를 받고, 일부는 관련 업무가 아닌 다른 업무를 받아 갈등을 겪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K씨가 이루고 싶었던 꿈은

K씨는 눈을 감기 직전까지 프로파일러로 살았다고 주변 사람들은 전한다. 투병 중에도 꿈이 있었다고 했다. 바로 국내에 제대로 된 프로파일러를 키울 수 있는 ‘범죄심리아카데미’를 만드는 것이었다. 2006년 서울지방경찰청으로 자리를 옮겨 근무하던 K씨는 2011년부터 경찰상담 사례관리, 성범죄 이론 등 학문적인 연구에 집중하며 자신의 꿈을 조금씩 키웠다. 프로파일러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앞으로 자신이 연구한 분야가 후배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란 믿음이 있었다.

배 학과장은 “K씨는 올초 대학에서 그동안 쌓은 경험을 전하고 싶다며 강의를 준비하기도 했다”며 “범죄심리학을 공부하려면 유학이 필요한데 그는 이런 체계적 교육과정을 국내에 정착시키고 싶어했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프로파일러 중에는 수사현장 분석을 선호하는 사람도 있고 연구 분야에 주력하는 스타일도 있다”며 “지방청에 한 명씩 배치될 경우 전문 분야를 갖기 어려우므로 프로파일러를 모아 상호 피드백을 받는 시스템을 마련하면 전문성 강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표 전 교수는 “업무 특성에 따라 연수나 휴식이 보장되지 않고 정신적 스트레스에 대한 상담도 부족하다”며 “인사상 인센티브를 보장하는 등의 대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 프로파일러범죄사건의 정황이나 단서를 분석해 용의자의 성격과 행동 유형, 성별 나이 직업 등을 추론하고 이에 맞는 수사 방향을 설정하는 전문가. 검거된 범인의 자백을 이끌어내는 역할도 한다.

김태호/오형주/마지혜 기자 highk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