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규제 없애라 - 한경 기업 신문고] 화장품 팔려면 정신감정 받으라니…

황당한 소상공인 규제

병원이름에 질환·신체명 못 써…환자들 혼란
학교앞 문구점서 탄산음료·과자 판매 금지
화장품을 팔기 위해선 정신감정을 받아야 한다. 메이크업 전문업체를 내려면 미용사 자격증이 있어야 한다. 일회용 이쑤시개도 개별 포장지에 제조연월을 모두 표시해야 한다….

덩어리 규제만 경제의 발목을 잡는 것이 아니다. 은퇴 후 창업 등 자영업 전선에 나선 사람들은 전혀 예기치 않은 규제와 맞닥뜨려 곤란을 겪는 경우가 많다. 25일 한국경제신문이 자영업 규제 실태를 파악한 결과 소상공인의 창업을 가로막는 안전·위생 규제는 수십 가지에 달했다. 대표적인 게 화장품 제조·유통업체를 운영하려면 정신감정을 받아야 한다는 화장품법 조항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소비자 안전을 위해 필요한 조항이라고 설명하지만 이것이 과연 필요한 규제인지는 논란이 분분하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제품 안전을 위해 하필이면 정신감정을 의무화해야 할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며 “정말 황당해 하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메이크업 창업 때 "미용사證 내라"…학문·홍문외과 '꼼수' 조장도생닭이나 오리를 팔 때 반드시 포장을 해야 한다는 축산위생관리법 조항도 재래시장 영세상인들에겐 부담스러운 규제다. 이 조항에 따르면 상인은 닭과 오리를 판매할 때 포장을 뜯어 진열하거나 팔아선 안 된다. 하지만 시장 상인들은 10마리로 포장된 생닭을 납품받아 나눠 판매하는 게 보통이다. 법을 지키려면 낱개로 다시 포장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따른다.

학교 인근 문구점 상인도 규제로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대다수 문구류 수요가 대형마트로 옮겨간 상황에서 문구점의 주 소득원인 과자 등 식품의 판매 규제가 강화됐기 때문이다. 어린이 기호식품으로 분류된 9000여개 품목 중 2000여개(탄산음료·영세업체 과자 등)가 학교 200m 이내 문구점에서 판매가 금지됐다.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대개 좋은 의도로 도입된 규제가 나중에 본말이 전도돼 피해를 입는 집단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메이크업(화장) 아티스트가 메이크업 전문업체를 내려면 머리를 다듬는 미용사 자격증까지 갖춰야 하는 것도 대표적인 ‘손톱 밑 가시’다. 메이크업 아티스트는 미용사보다 훨씬 뒤에 생겨난 직종이지만 영역 침범과 매출 감소를 우려한 미용사단체의 반발로 자격증 규제를 받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최근 창업 규제가 풀린 네일아트처럼 메이크업도 규제를 풀어야 한다”며 “머리를 손질하지 않는데도 왜 자격증을 요구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실효성이 떨어지는 규제가 편법을 불러 오히려 국민의 혼란을 불러일으키는 경우도 있다. 의료법상 일반 병원은 질환명과 신체명을 병원 이름에 사용하지 못한다. 예컨대 ‘항문외과’나 ‘유방전문병원’ 등은 안 된다. 전문병원이 아닌데도 전문병원처럼 보일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그러자 일부 병원은 항문외과 대신 ‘학문(항문과 비슷한 발음)’외과나 ‘홍문’외과로 이름을 짓는 ‘꼼수’를 부리고 있다. 눈썹 문신 같은 반영구 화장 시술은 의사 면허 소지자에게만 허용되다 보니 시술 시장이 음성화돼 오히려 소비자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문제는 이 같은 규제를 쉽사리 풀 수 없다는 것이다. 워낙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서다. 안경원의 ‘타각적 시력검사’ 허용 문제는 28년째 안경사단체와 의사협회가 줄다리기 중이다. 지금은 안경원에서 첨단검사기기를 사용할 수 없어 소비자들이 안경을 구입하려면 안과에서 먼저 시력검사를 받아야 한다.

안경사단체는 “30년 가까이 전문성을 축적했는데도 동일한 규제가 지속되고 있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반면 의사협회 측은 “시력검사는 진료행위이기 때문에 의사가 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규제의 좋은 점과 부작용이 모두 존재하고 이해관계가 복잡하기 때문에 많은 사회적 공론을 거쳐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문제”라고 설명했다. 일회용 젓가락과 이쑤시개 개별 포장지에 제조 연월일을 표시하도록 한 공중위생관리 규정도 선뜻 이해하기 힘들다는 의견이 많다. 약사가 가운을 입지 않으면 영업정지·과태료 등 처벌을 받는 규정도 웃지 못할 규제다. 애초 약국에서 비약사가 영업하는 것을 막기 위해 약사회 측 요청으로 도입한 규제지만 지금은 약사들이 불편하다고 규제를 풀어달라고 하는데도 바뀌지 않고 있다. 의사들에겐 이런 ‘가운 규제’가 없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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