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벤처생태계에 돈 돌게 하려면

김현석 산업부 차장 realist@hankyung.com
전기차 제조사인 미국 테슬라는 요즘 뜨는 회사다. 작년 3월27일 38달러였던 주가는 25일(현지시간) 220달러에 달한다. 시가총액도 271억달러로 제너럴모터스(GM)의 절반을 넘는다. 2011년 2억달러에 불과했던 매출이 작년 20억달러 이상으로 커지며 첫 흑자를 내자 투자자들이 전기차 시대 개막을 이제 현실로 인식하게 된 것이다.

이 테슬라가 마피아에 의해 탄생됐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주먹이나 총을 쓰는 마피아가 아니라 바로 ‘페이팔 마피아’란 투자꾼들이다. 페이팔은 2002년 이베이에 15억달러에 팔린 전자결제회사. 페이팔을 매각한 피터 티엘, 리드 호프먼, 스티브 천 등 창업자들은 큰돈을 벌었다. 돈이 도는 실리콘밸리

그들은 그 돈을 먹고 노는 데 쓰기보다 실리콘밸리 곳곳에 투자했다. 유튜브 링크트인 옐프 등은 그들이 직접 세운 회사고, 투자한 곳은 페이스북을 포함해 셀 수 없이 많다. 그래서 포천은 이들을 ‘페이팔 마피아’라고 칭했다. 테슬라의 최고경영자(CEO) 엘론 머스크도 그들 중 한 명이다. 그는 큰돈을 거머쥔 2003년 테슬라를 세웠고 연이어 스페이스X(우주여객선) 하이퍼루프(초음속 진공열차) 등도 창업했다.

한경은 작년과 올해 2월 실리콘밸리의 벤처생태계를 취재해 기획기사를 내보냈다. 현지에 가서 둘러보니 한국과 다른 게 너무나 많았다. 세계에서 모여드는 인재, 창의적 교육,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문화 등…. 그러나 가장 극명한 차이는 실리콘밸리엔 돈이 돌고, 한국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다. 페이스북은 25일 가상현실기기 벤처인 ‘오큘러스 VR’을 23억달러에 인수합병(M&A)했고, 지난달엔 메신저 서비스를 하는 와츠앱을 190억달러에 사들였다. 구글 애플 등도 매달 M&A를 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이렇게 페이스북 구글 애플 아마존 야후 등 실리콘밸리의 5개 대기업이 작년 한 해에만 65개 벤처를 샀다. 벤처 인수를 통해 신사업을 찾고, 신성장동력을 만들기 위해서다. 이들이 M&A에 쓴 수천억 달러의 돈은 다시 실리콘밸리에 재투자되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실리콘밸리 벤처생태계에는 자금이 돈다.

문어발 논란에 ‘생태계’는 없다

한국에서 네이버 라인이 카카오톡을 삼켰다면 어땠을까. 독과점, 문어발 논란 등으로 결국 중도 포기해야 했을 것이다. 국내에서 돈이 가장 많은 기업은 삼성이다. 이런 삼성은 구글 이상으로 신사업에 목말라한다. 벌써 몇 년 전부터 실리콘밸리에 가서 여러 벤처를 인수했다. 그러나 국내에선 함부로 살 수 없다. 안그래도 ‘삼성공화국’ 소리를 듣는데 괜히 벌집을 건드릴 필요가 없어서다. 이런 게 우리 벤처생태계에 돈이 돌지 않는 이유다. 물론 여기엔 대기업들의 과거 잘못도 크다. 과거 벤처들이 새 먹거리를 찾아내면, 대기업들은 이를 바로 베끼기에 바빴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다 보니 벤처에 돈을 공급해줄 곳은 정부와 공공부문밖에 없다. 그러나 “정부가 창업을 지원하겠다”는 대통령 한마디에 너도나도 뛰려다 보니 창업 붐이 일기도 전에 돈을 모아 굴리는 벤처펀드 매니저 몸값부터 폭등한다는 뉴스가 나온다. 자생적 시장시스템이 없는 상황에서 갑작스레 풀린 돈은 사기꾼 호주머니로 갈 가능성이 높다는 게 2000년 정보기술(IT) 버블 때 배운 교훈이다.

김현석 산업부 차장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