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인간에게 이기심을 허락하라…단, 비용은 반드시 내게하라
입력
수정
지면A28
환경론자들에게 날리는 환경경제학자의 돌직구“뭔가 잘못됐어. 공기는 깨끗하고 물은 맑고 다들 운동도 많이 하잖아. 먹는 건 죄다 유기농에 방목한 고기이고. 그런데 서른 살 넘게 사는 사람이 없어.”
누가 마지막 나무를 쓰러뜨렸나
거노트 와그너 지음 / 홍선영 옮김 / 모멘텀 / 323쪽 / 1만5000원
원시인들이 짧은 수명에 대해 의아해한다. 미국 주간지 뉴요커에 실린 만평 한 토막이다. 장수 리스크를 걱정하는 현대인은 심각한 인지부조화를 느낄 만하다. 공기와 물은 오염되고 다들 운동 부족에 비만이고, 먹는 것은 죄다 농약 투성이에 억지로 살찌운 고기다. 그런데 원시인보다 3~4배 더 살지 않나. 2009년 선댄스영화제에선 다큐멘터리 ‘노 임팩트 맨’이 눈길을 끌었다. 투덜이 작가 가족이 뉴욕 한복판에서 1년간 자동차, 일회용품, 전기까지 끊고 살면서 예전엔 몰랐던 새 삶을 찾았다고 예찬한다. 그렇다면 생태주의자들 주장처럼 타임머신을 타고 산업화 이전으로 돌아가야 할까. 소로처럼 월든 호숫가에 오두막을 짓고 살아야 할까.
하지만 환경경제학자인 《누가 마지막 나무를 쓰러뜨렸나》(원제 But Will the Planet Notice?)의 저자는 한마디로 일갈한다. “70억 인류 중 당신 혼자의 노력으로 뭐가 달라지냐”고. 70억명이 모두 바뀌지 않고선 지구가 알아채지도 못할 것이란 얘기다. 분리수거의 달인인 한국 주부들은 당장 열받을 만하다. “그럼, 도대체 어떡하라고!” 하버드대 정치경제학 박사인 저자는 현재 환경보호단체인 환경보호기금(EDF)의 선임 경제학자다. 그도 물론 환경론자다. 기후변화가 지구와 인간의 삶을 심각하게 위협하며, 반론의 여지도 없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환경론자들의 해법이 완전히 빗나갔다고 돌직구를 날린다. 금지와 규제가 답이 아니란 것이다. 시장은 물과 같아, 달갑지 않은 규제가 앞을 막아서면 빠져나갈 구멍을 샅샅이 뒤지기 때문이다.
저자는 알래스카 넙치 사례를 든다. 넙치 어획량이 급감하자 조업일부터 제한했다. 1년에 100일, 50일, 닷새, 끝내는 단 이틀로 줄였다. 결과는? 나머지 363일간 어부들은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결전의 날이 오자 수천 척을 동원해 넙치의 씨를 말렸다. 어부 수 제한, 조업일 단축, 조업기술 제한 등 어업규제는 소용없었다.
그러나 1995년 이후 기적이 일어났다. 추가 규제나 감시는 없었다. 달라진 것은 단 하나, 총어획량을 정해놓고 어부들에게 그 지분을 배분한 것(cap and trade)뿐이었다. 오늘 못 잡아도 내일 잡으면 되니 어부들은 느긋해졌고 고가 첨단장비를 갖출 이유도 사라졌다. 조업일은 이틀에서 거꾸로 200일로 늘었는데 넙치는 여전히 잘 잡힌다. 어부들의 수입은 5년간 4배로 뛰었다. 환경론자들이 문제 제기는 잘해도, 정작 해법은 경제학자들이 고안해냈다. 개릿 하딘의 ‘공유지의 비극’, 로널드 코스의 ‘코스의 정리’, 엘리너 오스트롬의 ‘공유지의 비극을 넘어서’가 그렇다. 인센티브, 외부효과의 내재화, 넛지이론, 롱테일법칙 등에 환경문제의 해법이 있었던 것이다.
저자는 온실가스 문제와 금융위기의 유사성에도 주목한다. 둘 다 긴 꼬리(롱테일)에서 일어나는 블랙스완이고, ‘이익의 사유화, 손해의 사회화’가 똑같다는 것이다. 따라서 잘못된 인센티브를 바로잡고, 외부효과를 내재화하고, 사회화된 비용을 개인에게 부담시켜야 한다는 요지다. 저자는 “얼마나 오염시킬지 각자 알아서 결정하라. 단, 그에 따른 비용은 한푼 빠짐없이 부담할 준비를 하라”고 목청을 높인다.
환경과 경제는 더 이상 양극단의 대척점이 아니다. 가장 덜 나쁜 환경보호 방법을 경제학이 보여주니까. 월든의 오두막은 소로 한 사람이면 족하다. 수많은 사람들이 밀집해 살수록 탄소발자국을 덜 남길 수 있다. 고밀도 복합개발, 즉 고도의 도시화가 답인 것이다. 이 책의 미덕은 트위터 글처럼 경쾌한 문장과 무수한 역설적인 경구에 있다. 독자는 자연스레 환경에 관한 끝장토론으로 이끌려간다. 물론 기후변화의 어두운 미래를 가짜 예언이라고 여기는 이들이나 전투적 생태주의자들은 읽다가 집어던질지도 모르지만.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